고대사

고대 인도 도시국가의 성장과 신흥종교의 탄생

아리아인이 고대 인도로 진격하고 브라만교가 자리 잡은 뒤, 베다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부족 사회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고대 인도의 정치·경제 중심지는 갠지스 강 상류에서 중류와 하류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 결과 각지에 도시국가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새로운 종교들도 잇달아 탄생하게 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고대 인도에서 성장한 도시국가와 탄생한 신흥 종교들을 정리해 본다.

코살라와 마가다

코살라

코살라는 기원전 6세기 무렵 갠지스 강 중류 지역에서 번성한 도시국가로, 당시 최초의 강국이자 문화적·정치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훗날 설명하겠지만 석가모니가 개창한 불교가 처음으로 퍼진 나라이기도 하다. 붓다가 활동하던 시기에 수많은 도시국가가 난립했는데, 이 시기 인도의 여러 나라를 통칭하여 마하자나파다(16대국)라고 부른다. 코살라 역시 16대국 중 하나로 꼽힌다.

도시국가들이 판치며 혼란을 겪던 이 시대, 무사 계급인 크샤트리야는 전쟁에 대비해 군사력을 담당하며 세력을 크게 키워 나갔다. 이러한 크샤트리야와 상공업을 영위하는 바이샤의 지원을 배경으로 새로운 종교가 탄생해 영향력을 넓혀 갔다. 그중 하나가 붓다가 연 불교였으며, 코살라의 일부 국왕들은 열성적인 신도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코살라의 수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대표적인 수도는 붓다가 설법을 행했던 사라바스티(슈라바스티)이다. 참고로 유명한 '기원정사(제타바나)'는 사라바스티 교외에 있었다고 하며, 실제 유적으로 발굴되기도 했다.

이후 코살라가 쇠퇴하자 동쪽의 마가다가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게 된다.

마가다

마가다는 갠지스 강 하류에서 일어난 나라로, 코살라와 자주 패권을 다퉜던 강대국이다. 마가다가 흥한 지역은 훗날 인도 여러 왕조의 중심지가 된다. 또한 불교와 자이나교가 이곳에서 탄생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마가다는 두 종교를 모두 보호했다.

마가다 역시 코살라와 마찬가지로 마하자나파다(16대국)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철광석 산지였으며, 갠지스 강을 통한 수운(水運)도 잘 발달해 있었다. 더불어 갠지스 강 하류는 우기에 비가 많이 내리는 편이라 세계 최대 규모의 망그로브 삼림이 존재할 만큼 삼림 자원도 풍부했다.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곡물 생산이 가능했고, 농업뿐 아니라 상공업까지 고르게 발달한 균형 잡힌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신흥 종교의 발전

인도에는 오늘날까지도 영향력을 유지하는 종교들이 있다. 앞서 언급한 마가다에서 탄생한 불교와 자이나교가 그것이다. 아울러 불교 등장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던 브라만교를 비판하며 생겨난 우파니샤드 철학도 주목할 만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신앙과 민간 신앙을 흡수한 힌두교가 싹트게 되는데, 이는 베다의 신들 대신 시바와 비슈누를 주신(主神)으로 삼는 종교이다.

불교란?

기원전 6세기 무렵, 고타마 싯다르타(존칭 붓다)를 창시자로 하여 탄생한 불교는 브라만교의 동물 제물 바치는 의식, 난해한 베다 의례, 브라만을 최상위 계급으로 여기는 바르나(신분) 제도를 부정하고, 수행을 통한 해탈(解脫)을 설교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초기 불교 집단은 계율을 지키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상가(僧伽, 승단)를 결성하고 출가자로서 수행에 전념한 것으로 보인다.

붓다 입멸 후에도 그의 가르침은 제자들에 의해 보존되어 여러 땅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자이나교란?

붓다가 불교를 연 것과 거의 같은 시기, 바르다마나(마하비라)가 개창한 종교가 자이나교이다.

불교와 마찬가지로 브라만교 의례의 권위와 베다 성전의 권위를 부정했다. 자이나교의 특징 중 하나는 고행을 통해 영혼을 단련하고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살생을 엄격히 금하는 가르침 때문에 농사 같은 생산 활동을 피하고 상업에 종사하는 신도가 많았다.

무심코 살생을 저지를 수 있는 직업을 기피한 결과, 오늘날에도 자이나교도는 소매업이나 금융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으며, 신도 수는 적지만 부유한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우파니샤드 철학이란?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하는 불교·자이나교 같은 움직임과 함께, 브라만교 내부에서도 개혁 운동이 퍼져 나갔다.

브라만교는 원래 의례를 중시했지만, 의례가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게 변해버리면서 의례 절대주의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그리하여 외적인 의례보다 내면의 사색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우파니샤드 철학이다. 우파니샤드 철학은 기원전 1000년경부터 500년경까지, 즉 베다 시대 후기에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토양 위에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힌두교의 탄생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힌두교는 창시자가 알려져 있지 않고 성립 연대도 명확하지 않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종교로 여겨진다.

핵심 경전이 없고(브라만 경전을 권위 있는 것으로 인정할 뿐), 명확한 체계를 갖춘 종교라기보다는 인도의 의례(제사와 의식 규정)와 제도, 관습을 포괄하는 개념(힌두교, 학자에 따라 그 범위가 다름)이라 할 수 있다.

힌두교는 윤회와 해탈을 기본으로 하므로 앞서 살펴본 종교들과 공통점이 있다. '브라흐마', '비슈누', '시바'의 삼신(三神)이 특히 중시된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카스트 제도의 존재이다. 현세는 과거의 업(業)의 결과이므로 이를 받아들이며 현재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카스트는 부모에게서 물려받아 변경할 수 없으며, 직업 등과 함께 세습되어 오늘날까지 인도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도시국가가 성립하고 종교가 탄생하는 가운데 마가다가 세력을 넓혀 갔다. 그러나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인도 북서부까지 진출하면서 상황이 크게 변화한다.

알렉산드로스 사후 그리스계 세력이 각지에 나라를 세우고 인도 전역이 혼란에 빠지는 동안, 마가다에서는 인도 최초의 통일 왕조인 마우리아 왕조가 흥기하게 된다. 인도의 역사는 이렇게 조금씩 움직여 간다. 마우리아 왕조 이후의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