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 프랑스, 잊혀진 고고학
1940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해였습니다. 같은 해 6월, 프랑스는 독일에 패배했고, 북부는 독일군에 점령된 상태였으며 남부에서는 페탱(Pétain)이 이끄는 비시(Vichy) 정권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드골(Gaulle) 장군은 저항을 호소하는 상황 속에서, 고고학적 발굴조차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두운 시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고고학적 발견 중 하나가 시작되었습니다.
주요 인물
- 조르주 아니엘(Georges Agniel)
- 앙리 브뢰유(Henri Breuil)
- 시몽 코앙카(Simon Coencas)
- 조르주 에스트레귈(Georges Estreguil)
- 레옹 라발(Léon Laval)
- 자크 마르살(Jacques Marsal)
- 마르셀 라비다(Marcel Ravidat)
발견의 순간
1940년 9월 8일, 십 대 소년 마르셀 라비다는 다섯 명의 친구들과 함께 애견 '로보(Robot)'를 데리고 도르도뉴(Dordogne) 지방 몽티냐크(Montignac) 근교 시골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토끼를 쫓던 로보가 갑자기 모습을 감추고 말았습니다. 강아지를 찾던 중 마르셀은 로보가 깊이 1.5미터, 지름 1미터나 되는 거대한 구멍에 빠져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즉시 뒤따르던 친구들에게 알렸고, 일행은 자신들이 라스코 성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찾아낸 것이라 믿고 나중에 다시 오기로 했습니다.
9월 12일, 마르셀이 그 장소를 탐험하러 떠났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일이 있거나 동행하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길을 가다 만난 자크 마르살, 조르주 아니엘, 시몽 코앙카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함께하게 됩니다. 현장에 도착한 네 사람은 한 시간 가까이 칼로 좁은 구멍을 넓혔습니다. 통로가 충분히 커지자 마르셀 라비다가 먼저 몸을 내밀었고, 엎드린 채 몇 미터를 기어간 후 일어나 친구들을 따라오라고 불렀습니다.
네 명 모두 동굴 안에 들어선 순간, 자크가 벽화를 가리켰습니다. 그들은 이런 발견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벽을 따라 수십 수십 마리의 그려진 동물들—야생소, 황소, 말들이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충격에 빠진 소년들은 다음 날 더 좋은 조명 아래 보물을 다시 감상하기 위해 돌아오기로 결심했습니다.
전문가의 검증
소년들은 곧바로 옛 스승인 레옹 라발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의심하던 라발은, 뛰어난 소묘 실력을 지닌 또래 친구 조르주 에스트레귈이 동굴 속 그림들을 스케치해서 보여준 후에야 비로소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발견에 완전히 매료된 그는 선사시대 전문가인 브뢰유 신부(Abbé Breuil)에게 알렸고, 브뢰유는 즉시 이 발견의 지대한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브뢰유는 이 동굴을 '페리고르의 시스티나 성당', 혹은 '선사시대의 베르사유'라고 불렀으며, 동굴 벽화를 기원전 18,000년경의 작품으로 추정했습니다. 비시 정부는 1940년 12월, 라스코 동굴을 사적(史蹟)으로 지정했습니다.
발견 이후의 변화
프랑스가 전쟁 중이던 1940년 9월, 이 '벽화 예술의 시스티나 성당'의 발견은 당시 기대만큼 큰 반향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48년 일반 공개가 시작되자 열광적인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인파를 통제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고, 그 결과 동굴은 점차 훼손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1963년 4월 18일, 당시 문화부 장관이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는 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폐쇄를 결정했습니다.
이후 원본과 똑같이 재현된 '라스코 II(Lascaux II)'가 건설되어 20년 후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1979년, 라스코 동굴은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그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