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서막: 히틀러와 나치 독일의 팽창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 총리로 임명되며 권력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의 핵심 정치 목표는 독일 민족을 위한 '생존 공간(레벤스라움, Lebensraum)'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라인란트를 재무장시켰으며, 1938년 3월 12일에는 독일군이 오스트리아로 진입해 단 한 발의 총성도 없이 오스트리아를 병합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안슐루스(Anschluss)', 즉 오스트리아 병합입니다.
폴란드 침공과 전쟁의 발발
1939년 9월 1일, 독일은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를 기습 침공했습니다. 폴란드의 동맹국인 프랑스와 영국은 9월 3일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정작 직접적인 군사 개입에는 나서지 않았습니다. 독일군은 전차와 항공력을 결합한 소위 '전격전(블리츠크리크, Blitzkrieg)' 전략을 구사했고, 포위와 폭격에 시달린 바르샤바는 결국 9월 28일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해당 기간: 1939년 9월 3일 ~ 1940년 5월 10일

주요 인물
- 아돌프 히틀러 (독일)
- 윈스턴 처칠 (영국)
- 네빌 체임벌린 (영국)
- 필리프 페탱 (프랑스)
-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가짜 전쟁'의 경과
연합국이 나치 독일과 전쟁 중이었음에도, 서부 전선에서는 실질적인 군사 작전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모젤 강과 라인 강 사이 국경 지대에 프랑스-독일 전선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프랑스의 마지노 선(Maginot Line)과 독일의 지크프리트 선(Siegfried Line)이라는 두 거대한 방어선이 서로 마주 볼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를 가리켜 '가짜 전쟁(Drôle de guerre)', 즉 '이상한 전쟁'이라 부릅니다. 연합국은 시간을 벌고자 했습니다. 영불 해군 전력은 분명 우위에 있었지만, 영국이 프랑스로 파견할 수 있는 육군 병력은 매우 부족했습니다. 또한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서 드러난 전격전의 위력은 프랑스 장군들로 하여금 공세보다 방어적 준비를 우선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과와 역사적 의의
1940년 5월 10일, 히틀러는 오랜 침묵에 종지부를 찍고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침공합니다. 프랑스군은 적을 막기 위해 벨기에 국경으로 급히 진출했지만, 독일은 이미 기습 작전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아르덴 숲을 독일 전차 부대가 돌파하면서 프랑스군은 크게 압도당했습니다. 독일군은 북상하여 벨기에 인근에 집결한 영불 연합군을 집게 기동으로 포위했습니다. 주력 부대가 포위된 가운데 독일군은 서쪽으로 거의 저항 없이 진격해 6월 11일 마른 강에, 6월 12일에는 디종에 도달했고, 6월 14일 드디어 파리에 입성했습니다. 마침내 6월 22일, 페탱은 레톤드에서 히틀러와 휴전 협정에 조인합니다. 불과 45일 만에 독일은 서부 연합군을 완파한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른바 '가짜 전쟁'이 1940년 프랑스의 패배를 예고했다고 평가합니다. 군사 문제를 놓고 정치 지도자들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약 1년 가까이 이어진 군대의 소극적 태세, 전쟁 수행 동원의 어려움과 시민 사기의 저하, 그리고 참모본부가 전략을 갱신하지 못한 점—특히 전차의 적극적 활용 실패—등이 프랑스 붕괴의 복합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