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카라칼라 칙령(212년): 로마 제국 전체에 시민권을 연 방포

로마 시민권은 원래 매우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었으며, 주로 세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제국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점령지의 다른 민족들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서기 48년,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자신이 로마가 아닌 곳에서 태어난 인물이었기에, 이른바 '털 많은 갈리아인(Gallia Comata)'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관직 진출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러한 개방 정책은 베스파시아누스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바나사 청동판문, 169~177년)에 의해 계승되었습니다.

212년, 역사적 전환점

카라칼라 칙령(212년): 로마 제국 전체에 시민권을 연 방포

주요 인물

카라칼라(Caracalla)

시민권 취득 절차

로마 시민권은 기본적으로 세습되었지만, 때로는 구입할 수도 있었고(세습 포함), 또는 제국군 보조부대에서 25년간 성실하게 복무한 후에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카라칼라 황제(188~217년)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들로, 로마가 아닌 리옹에서 태어났습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다스리는 로마 제국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11년 즉위한 그는 권력 장악 이듬해인 212년,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칙령을 반포했습니다. 단, '데디티키(dediticii)', 즉 무력으로 정복당한 야만족과 노예는 이 혜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카라칼라의 동기

카라칼라의 정확한 의도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칙령에 관한 직접적인 문헌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재정적 동기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시민세는 거주 도시에 납부되며, 로마 국적이 없는 사람들의 세금은 제국 국고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모든 자유민을 시민으로 만들면 제국 수입을 크게 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정적인 동기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국 내에서 신분과 지위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했기 때문에, 이를 단순화하는 것이 제국 통치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황제는 백성을 하나로 결합시켜 그 수를 늘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로마 시민이라는 것은 명예였습니다. 따라서 다른 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이러한 존엄과 함께 딸린 여러 특혜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칙령의 결과와 영향

  • 군대 입대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로마 시민권 획득이었습니다. 이 칙령의 반포로 군대 모집에 심각한 어려움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군대는 더 이상 정복의 군대가 아니라 방어의 군대였기에, 매력도가 크게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 방황하던 기독교인들도 로마 시민이 되었지만, 제국의 신들을 섬기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박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 이 칙령은 사회 분열의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백성이 두 개의 뚜렷한 계층으로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공화정 시대부터 시민권을 누려온 지배 계층 호네스티오레스(honestiores)와 하층민 훔밀리오레스(humiliores)로 구분되었습니다.
  • 병합된 민족들은 이 칙령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황제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재정적 동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칙령은 제국을 통일하고 그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