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6월, 프랑스는 독일군의 기습적인 기갑 공세 앞에서 무너져 내렸습니다. 파리가 함락되고 내각이 흔들리는 가운데,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 필리프 페탱 원수가 집권하면서 프랑스 역사상 가장 어두운 장면 중 하나가 시작됩니다. 제3공화국의 몰락과 비시 정권의 탄생 과정을 날짜별로 짚어봅니다.
전개 과정: 프랑스 함락까지
- 1939년 9월 1일: 독일 국방군(베흐마흐트)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 1939년 9월 3일: 프랑스와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 1940년 5월 10일: 히틀러가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로 군대를 진격시켰습니다. 벨기에는 빠르게 항복했고 칼레 시가 함락되었습니다. 프랑스-영국 연합군은 더 이상 기동할 여지를 잃고 곧 됭케르크에 포위되고 말았습니다.
- 1940년 6월 14일: 파리가 독일군에 점령당했습니다.
- 1940년 6월 16일: 휴전에 반대하던 총리 폴 레노가 사임했습니다. 후임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으로서 국민적 지지가 절대적이었던 필리프 페탱 원수가 선출되었습니다.
- 1940년 6월 18일: 영국으로 피신했던 드골 장군이 런던 방송을 통해 프랑스 국민에게 독일에 대한 저항을 호소했습니다.
- 1940년 6월 22일: 레톤드에서 제3제국 대표단과 프랑스 정부 사이에 휴전 협정(정전)이 체결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은 1918년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협정이 맺어진 장소였습니다. 히틀러는 같은 자리에서 조약을 성립시킴으로써 과거의 굴욕을 설욕하려 한 것입니다. 이로써 프랑스 영토는 둘로 분단되었는데, 북부는 독일의 직접 점령 하에, 남부는 페탱 정부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핵심 인물
- 필리프 페탱
- 피에르 라발
- 아돌프 히틀러
비시 정권 수립 절차
1940년 7월 10일, 비시에서 각료평의회 부의장(부총리 격) 피에르 라발은 새로운 헌법을 제정·공포할 수 있도록 페탱 원수에게 전권을 위임해 줄 것을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표결 결과 569명이 찬성했고, 80명이 반대했으며, 17명이 기권했습니다.
결과와 영향
- 1940년 7월 10일: 페탱 원수는 전권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로써 제3공화국은 막을 내리고 비시 정권이 출범했습니다. 비시 정권은 민주적 절차 없이 수립된 권위주의 체제였습니다.
- 페탱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선거, 정당, 노동조합을 금지했습니다. 공화국의 표어였던 '자유·평등·박애' 대신 '노동·가족·조국'이라는 구호가 내걸렸습니다.
- 페탱은 애국심, 가톨릭 신앙, 가족, 농업을 중심 가치로 삼는 프로파간다를 전개했습니다. 동시에 그 자신은 독일에 맞서는 침착하고 굳건한 지도자로 부각되었습니다.
- 1940년 10월: 유대인이 공무원과 언론계에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반유대주의 법령이 공포되었습니다. 이 법령은 1941년부터 유대인 가족들의 추방으로 이어졌습니다.
- 1940년 10월 24일, 몽투아르: 페탱 원수가 히틀러와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이 장면은 두 사람 사이의 협력 관계, 즉 독일과의 '국가 협력'이 시작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