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배경
소련은 1950년대부터 아프가니스탄과 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특히 당시 집권 세력이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던 가운데, 1978년 4월 27일 마르크스주의 성향을 띤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PDPA)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합니다. 수상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는 소련과 긴밀히 협력하여 세속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이는 일부 부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결국 여러 지역이 정부의 통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으며, 타라키는 아프가니스탄 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대통령에 취임했습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소련은 현 정권을 지원함으로써 이 지역의 안정을 확보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쟁 개요
기간: 1979년 12월 24일 ~ 1988년 4월 14일
주요 인물: 누르 무함마드 타라키, 바브라크 카르말,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쟁의 경과
1979년 12월 24일 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었습니다. 소련 병사들은 12월 27일 수도 카불에 진입했으며, 소련은 자신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인 바브라크 카르말을 권좌에 앉혔습니다. 동시에 적군(붉은 군대)은 주요 전략 요충지들도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군사 상황은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인 '무자헤딘'은 게릴라 전술을 활용해 소련 점령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들은 험준한 산악 지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소련군을 곤경에 빠뜨렸는데, 소련군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겪었던 것처럼 이러한 비정규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소련의 국제적 이미지는 더욱 실추되었습니다. 유엔과 아랍 국가들이 분쟁 초기부터 신속하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음에도 소련은 이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항의로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다수 국가의 보이콧을 받았습니다.
이 분쟁에서도 냉전의 전형적인 구도가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미국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하여 무자헤딘에게 재정적·군사적 지원을 제공한 것입니다. 1988년,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정치 개방과 개혁의 노선에 따라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결정했습니다. 결국 1988년 4월 14일 체결된 제네바 협정으로 길었던 분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쟁의 결과
- 이 분쟁으로 2만 명 이상의 희생자가 발생했으며, 대부분 소련 측의 피해였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직접 개입한 이 전쟁은 냉전 시대 마지막 첨예한 긴장 국면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 소련군 철수 직후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이슬람 세력 간의 충돌이 이어졌고, 소련의 지원을 받던 정권은 1992년 4월 29일 붕괴했습니다. 유엔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의 카불 함락을 막지 못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은 이후 극심한 불안정의 시대에 들어서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