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내전의 배경
1915년 니콜라이 2세 차르가 직접 군 통수권을 장악한 이후, 러시아 제국군은 막대한 손실을 거듭하며 국가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었습니다.
1917년 2월 23일부터 28일까지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노동자 시위는 반란에 가담한 병사들의 지지를 받았고, 결국 3월 2일 차르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소비에트(노동자·병사 평의회)와 임시정부가 공존하는 체제가 등장했지만, 임시정부는 대중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한편 1917년 4월 스위스에서 귀국한 레닌이 지도하게 된 볼셰비키는 1917년 10월 봉기를 통해 임시정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합니다.
같은 해 독립을 쟁취한 핀란드 역시 '적군(Red)'과 '백군(White)' 사이의 내전을 겪으며 격랑에 휩싸였습니다.
기간: 1917년 11월 ~ 1921년 6월

주요 인물
- 니콜라이 2세
-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레닌)
- 레온 트로츠키
- 니콜라이 유데니치
- 요시프 스탈린
내전의 경과
볼셰비키의 집권은 기존의 긴장을 폭발점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부르주아 언론은 탄압당했고, 입헌회의는 해산되었습니다. 마침내 1918년 봄, 내전이 발발하여 다음 두 세력이 충돌하게 됩니다.
- 백군(白軍): 차르 정권의 복귀를 원하는 왕당파 세력으로, 반공주의 성향을 띠었으며 일본,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적군(赤軍): 볼셰비키가 이끄는 군대로, 차르의 복귀에 반대하고 전시공산주의 노선을 추구했습니다.
페트로그라드는 1918년 3월 3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때까지 독일군에 점령되어 있었고, 이러한 위협 속에서 수도는 모스크바로 옮겨지게 됩니다. 외부와 내부의 위협에 직면한 소비에트 정부는 총동원령을 선포했으며, 1918년 2월 레온 트로츠키가 붉은 군대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대중 숭배의 대상이자 국가 선전의 설계자였던 레닌은 정치경찰인 체카(Cheka)를 창설하고, 부유 농민(쿨락)과의 투쟁을 조직하며 반혁명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권력을 공고히 했습니다. 체카는 포로수용소 운영을 시작했고, 1918년 7월 17일 밤에는 차르 니콜라이 2세가 암살됩니다. 내전 기간 동안 공장과 상점의 국유화, 국교 분리, 부르주아 재산의 집단화, 배급제 실시 등 이른바 '전시공산주의'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또한 1919년 파스토프 학살 등 반유대주의 포그롬(유대인 학살)이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1919년 백군은 조율 부족으로 여러 차례 패배를 거듭하며 후퇴했고, 주도권은 점차 적군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내전이 단순히 '적군'과 '백군'의 대립만으로 한정된 것은 아닙니다. 군 입대를 거부한 자들로 구성된 '녹군(Green Army)'은 농촌 자치를 내걸고 양측에 동시에 맞섰습니다. 이러한 농민 운동은 1921년 여름 가혹하게 진압되었으며, 서부 러시아에서의 대규모 전투는 대체로 1921년까지 종결되었습니다.
내전의 결과와 영향
- 대기근과 사회 분열: 1920~1921년의 대기근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외교적으로 고립된 국가를 더욱 황폐화시켰습니다. 노동자 계급은 체카, 당, 붉은 군대 사이에서 분열되었습니다.
- 신경제정책(NEP) 도입: 경제 침체에 직면한 레닌은 계획경제 안에 시장경제의 자리를 다시 마련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1921년 3월 시작된 신경제정책(NEP)입니다.
- 소련의 탄생: 1922년, 소비에트 연방(USSR)이 공식적으로 수립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