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회(États Généraux)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왕이 소집하는 특별한 의회였습니다. 1302년 필리프 4세(미남왕 필리프)가 창설한 이 회의는 프랑스 왕국 전역에서 세 신분, 즉 성직자·귀족·평민(제3신분) 대표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1789년 5월, 극심한 재정 위기와 사회적 혼란에 빠진 프랑스는 전례 없는 봉기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었고, 루이 16세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 없이 삼부회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주요 인물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Jacques Necker), 낸시 주교 라파르 몽시뇌르(Monseigneur de la Fare), 그리고 국왕 루이 16세(Louis XVI).
개회식과 경위
1789년 4월 27일로 예정되었던 삼부회가 연기된 데 불만을 품은 대표들은 5월 4일, 왕국 각지에서 모인 무려 1,139명의 의원과 함께 각자 '불만 사항 목록(Cahiers de doléances)'을 들고 베르사유 생루이 대성당으로 행진했습니다. 이 목록에는 백성들의 불만과 요구,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사 첫날부터 마찰의 씨앗이 있었습니다. 예식 담당관 드뢰브레제 후작(Marquis de Dreux-Brézé)이 전달한 정복 규정은 제3신분 대표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추기경은 붉은색 제의를, 주교는 보라색 스톨을 입는 반면, 제3신분 대표에게는 검 차용이 금지되었고 하급 성직자들처럼 검은 옷만 입도록 강요되었기 때문입니다. 행렬 도중 국왕은 환호를 받았지만 왕비는 그렇지 못했으며, 성당 안에서는 낸시 주교 라파르가 궁정을 비판하는 설교를 올려 화제를 모았습니다.
5월 5일, 1614년 이후 175년 만에 삼부회가 공식적으로 개회되었습니다. 대표들은 국민 주권, 인간과 시민의 평등한 권리, 봉건 특권의 거부, 개인의 자유 등을 명문화한 헌법 제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재무장관 네케르가 수천만 리브르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메우기 위해 새로운 세금만으로 충분하다고 밝히자 의원들은 격분했고, 루이 16세는 세 신분의 추가 회합을 막기 위해 베르사유의 메뉴 플레지르 홀(Salle des Menus Plaisirs) 문을 잠가 버렸습니다.
결과와 영향
삼부회의 결렬 이후, 전체 프랑스 인구의 90% 이상을 대표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제3신분은 1789년 6월 17일 스스로를 '국민의회'로 선포합니다. 회합 금지령에 굴하지 않고 그들은 테니스 코트 실에 모여 헌법을 완성할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겠다는 유명한 '테니스 코트의 맹세'(1789년 6월 20일)를 다졌습니다.
이러한 열기 속에서 1789년 8월 4일 봉건적 권리와 특권의 폐지가 결의되었고, 격동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결국 10월에 이 선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삼부회는 모든 사람의 권리와 평등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의 토대를 남기며 절대왕정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출생에 따른 특권을 원칙으로 삼았던 구체제(Ancien Régime)는 이로써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