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프랑스 제3공화국 헌법: 단 한 표 차이로 탄생한 공화정의 기틀

배경: 제2제국의 몰락과 잠정 체제의 시대

프랑스 제3공화국은 프로이센과의 전쟁이라는 국난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1870년 9월 2일: 나폴레옹 3세가 스당에서 프러시아 군대의 포로로 잡힙니다.
  • 1870년 9월 4일: 레옹 갈베타가 제3공화국을 선포하며, 제2제국은 막을 내립니다.
  • 1871년: 입법 선거가 실시되어 왕당파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왕위 계승자 문제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왕정 복고(국왕의 복위)는 실패로 돌아갑니다. 새로 구성된 국민의회는 아돌프 티에르를 행정부 수반으로 임명하지만, 군주제 복고에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2년 뒤 그를 해임합니다.
  • 1873년 5월 24일: 파트리스 드 마크마옹이 티에르를 이어 국가원수로 취임하며, 임기는 무기한으로 정해집니다.
  • 헌법이 아직 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치 체제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형태로 운영됩니다.

1875년, 헌법 제정의 기점

프랑스 제3공화국 헌법: 단 한 표 차이로 탄생한 공화정의 기틀

핵심 인물

  • 아돌프 티에르 (Adolphe Thiers)
  • 파트리스 드 마크마옹 (Patrice de Mac Mahon)
  • 앙리 발롱 (Henri Wallon)
  • 앙셀름 바티 (Anselme Batbie)

입법 절차

  • 1873년 11월 20일: 의회는 7년 임기법(세프타나)을 채택하고 행정권을 마크마옹에게 위임합니다. 같은 법은 헌법 초안 작성을 담당하는 30인 위원회도 구성했는데, 왕당파 의원이 다수를 차지한 이 위원회는 앙셀름 바티가 위원장을 맡았습니다.
  • 1875년 1월 30일: 앙리 발롱의 수정안(법안에 대한 수정 조항)이 불과 단 한 표 차이인 353대 352로 채택됩니다. 이로써 공화제, 대통령직, 7년 임기가 헌법법에 공식적으로 명문화됩니다.

헌법의 성립과 영향

국민의회는 최종적으로 세 개의 헌법법을 통과시켜 제3공화국의 법적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 1875년 2월 24일 법: 상원의 조직에 관한 규정
  • 1875년 2월 25일 법: 공권력(국가 기관)의 조직에 관한 규정
  • 1875년 7월 16일 법: 공권력 상호 간의 관계에 관한 규정

이 헌법법들은 약 65년간 프랑스의 기본 질서를 지탱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 7월 10일, 제2차 세계대전 중 하원의원과 상원의원들은 필리프 페탱 원수에게 전권을 넘겼고, 이로써 제3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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