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샹폴리온,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비밀을 열다

프랑스 혁명은 모든 것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공포정치가 남긴 혼란 뒤에서, 한 개인의 독재를 막기 위해 집단 지도 체제로 권력을 잡은 것이 총재정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정부가 단 한 사람, 오직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을 세상 앞에 내세우게 됩니다.

이탈리아 전역의 승리로 명성이 높아진 그는 더 큰 군사적 영광을 좇아 이집트 원정을 계획했습니다. 위세 드높은 장군을 멀리 보내는 일에 흡족했던 총재정부는 그의 계획을 지원했습니다. 1798년부터 1801년까지 이어진 이집트 원정은 보나파르트의 영광을 위해 상당 부분 미화되었지만, 오랫동안 잊혀졌던 신비한 땅과 고대의 보물들을 세상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원정 도중이던 1799년, 부샤르 중위가 로제타에서 발견한 한 돌판에는 기묘한 고대 문자, 즉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무렵 태어난 장프랑수아 샹폴리옹(1790~1832)은 고고학에 조예가 깊었던 형 자크조제프에게 일찍이 학문의 길잡이가 되었는데, 그 형은 원정 기록을 모은 저술 『이집트지』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1821~1822년

인물: 장프랑수아 샹폴리옹


해독 과정

샹폴리온은 매우 어린 나이에 상형문자 해독이라는 대업에 착수합니다. 당시 로제타석의 모사본은 이집트 애호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었지만, 그가 손에 넣은 판본은 질이 좋지 못했습니다. 1814년, 그는 영국 왕립학회 회장에게 편지를 보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원본과 비교할 기회를 요청했습니다.

1821년에는 원정 때 가져온 검은 돌판에서 프톨레마이오스 5세의 이름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 필라에의 오벨리스크에서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름을 읽어냈습니다. 왕의 이름이 두 문헌에 공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해독의 결정적인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1822년 9월 14일, 마침내 상형문자의 코드가 풀립니다. 그는 상형문자가 하나의 관념을 나타내는 표의 문자 체계와 동시에 음성 표기 체계에도 기반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격한 감동 끝에 그는 다행히 가벼운 발작을 겪었습니다. 일주일 뒤 그는 문예아카데미(Académie des Belles-Lettres)에서 첫 연구 성과를 발표했습니다.

2년 후에는 상형문자 번역을 위한 정밀한 체계를 확립했습니다. 음성 상형문자를 콥트어와 데모틱 문자와 비교한 대조표를 작성한 것입니다. 이후 나폴레옹 원정 때 운반된 유물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를 방문하여 자신의 체계를 검증했습니다. 1826년에는 루브르 박물관 고대 이집트 부서의 관장으로 임명됩니다. 2년 뒤에는 마침내 파라오의 땅을 밟아 자신의 이론적 체계를 현실과 대조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18개월간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고대 이집트를 전담하는 최초의 교수직을 차지했고, 고대 이집트어의 문법과 사전을 집필했습니다.


영향과 의의

샹폴리온에 의한 상형문자 해독은 파라오의 땅에 새겨진 수많은 비밀을 밝혀내는 문을 열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그는 새로운 학문인 이집트학을 창시했으며, 이는 역사학자들이 그동안 다가가지 못했던 이집트인들의 역사를 비로소 탐구할 수 있게 만든 위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