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죽음까지 명령을 지킨 영웅 중위…언덕 170에서 벌어진 12시간의 사투

죽음까지 명령을 지킨 영웅 중위…언덕 170에서 벌어진 12시간의 사투

아라칸 공세, 언덕 170을 두고 벌어진 전투

1945년 1월, 영국군은 당시 버마(현 미얀마)의 아라칸 지역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영국군의 계획은 제3코만도여단을 강가우(Kangaw) 일대의 일본군 진지 남쪽에 배치해, 그곳에 주둔하던 일본군 제54보병사단의 퇴로를 차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전의 핵심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언덕 170(Hill 170)'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고지를 장악하면 적의 강제 퇴각 경로를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3여단 산하 제1코만도 부대가 이 언덕의 방어를 맡았고, 일본군이 포위망을 돌파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저지해야 하는 임무를 떠안았습니다.

300명의 일본군이 몰려왔다

예상대로 일본군은 대규모 역공에 나섰습니다. 언덕 북쪽 방어선 일대는 젊은 조지 노랜드(George Knowland) 중위가 지휘하는 제4소대가 담당하고 있었는데, 지휘관을 포함해 25명 규모의 부대였습니다.

1945년 1월 31일, 일본군은 박격포 사격으로 소대 진지를 포격하기 시작했고, 기관총 사격과 함께 진지를 훑으며 압박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노랜드 중위는 포화를 아랑곳하지 않고 참호를 오가며 병사들을 격려했습니다. 갑자기 비명이 들리고 사격이 멎었습니다. 그 순간 300명이 넘는 일본군이 소대 진지로 돌진해 온 것입니다.

참호를 오간 용감한 지휘관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중위의 모범에 힘입어 소수의 영국군은 눈부신 전투를 펼쳤습니다. 노랜드 중위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곳, 즉 화선(火線)의 맨 앞에서 참호를 오가며 탄약을 나눠주고 적에게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그러던 중 브렌 경기관총을 운용하던 병사들이 피탄당했습니다. 노랜드 중위는 즉시 참호로 달려가 직접 기관총을 잡고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지형상 참호 안에서는 조준이 어려웠기에, 그는 몸을 드러낸 채 10m 거리까지 접근한 일본군을 향해 총구를 겨눴습니다. 그는 부상당한 병사들의 응급처치와 후송이 가능할 때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관총 자리로 달려가 교대하려던 병사 두 명마저 부상을 입으면서, 노랜드 중위는 결국 부하 두 명이 일본군의 총탄을 뚫고 무사히 도달해 총을 넘겨받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박격포 한 발, 여섯 명의 적을

첫 번째 공격은 격퇴됐지만, 더 거세게 두 번째 공격이 몰아쳤습니다. 노랜드 중위는 50mm 박격포를 집어 들고, 마치 소총처럼 사용하며 적을 향해 발사했습니다. 첫 발이 일본군 여섯 명을 무력화시켰습니다.

박격포탄이 바닥나자 그는 소총을 집어 들고 전투를 계속했고, 이내 톰미건(기관단총)을 찾아 일본군을 쓸어눉혔습니다. 그는 부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사격을 멈추지 않았고, 수많은 적을 쓰러뜨린 끝에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습니다.

12시간의 사투, 그리고 승리

노랜드 중위의 영웅적인 모습은 소대 전체에 용기를 불어넣었습니다. 24명 중 14명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참화 속에서도, 이들은 필사적으로 돌진하는 일본군을 무려 12시간 동안 막아냈습니다.

증원부대가 차츰 도착하면서 영국군은 용감한 중위와 그의 부하들이 사수한 진지에서 역공에 나섰고, 마침내 일본군 제54보병사단의 퇴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22세의 영원한 영웅

노랜드 중위는 겨우 22살의 나이로 전사했습니다. 켄트주 출신인 그는 왕립 노퍽 연대에 입대했고, 이후 제1코만도로 전속되었습니다.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영국 최고 군사 훈장인 빅토리아 십자장(Victoria Cross)이 추서되었습니다.

죽음까지 명령을 지킨 영웅 중위…언덕 170에서 벌어진 12시간의 사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