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이슬람교의 시작: 정통 칼리프 시대와 제국의 탄생

이슬람교의 시작: 정통 칼리프 시대와 제국의 탄생

우마이야 모스크 안뜰 전경, 다마스쿠스(706~715년 건립) • ISTOCKPHOTO

무함마드 사후, 부족 방식의 권력 승계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뒤를 이을 후계자(칼리프)는 부족 사회의 관례에 따라, 동맹 씨족들 간의 합의를 통해 선출되었다. 초대 칼리프 아부 바크르(재위 632~634)는 선출 당시 이미 고령이었지만 무함마드와 가장 가까웠던 인물로, 부족들의 통합을 유지하며 아라비아 중부로의 확장을 계속해 나갔다.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의 진출은 제2대 칼리프 우마르(재위 634~644) 치세에 본격화되었으며, 그 형식은 전통적인 부족 약탈 원정이었다. 서쪽 전선에서는 팔레스타니아-시리아 지역, 그리고 이어진 이집트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며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을 아나톨리아 고원 지대로 후퇴시켰다. 동쪽에서는 유프라테스 강변의 이라크, 나아가 이란 방면에서 얻은 성공이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다.

제국의 탄생

제3대 칼리프 우스만의 시대에 이르러 문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정복된 영토가 이미 하나의 '제국' 규모에 이르렀음에도, 그 지배 권력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커져갔던 것이다. 결국 우스만은 656년 불만을 품은 부족 출신 정착민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그의 뒤를 이은 알리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딸 파티마의 남편)였지만, 암살자들이 자신의 지지자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고 우스만의 친족들은 피의 복수를 요구하는 등 최악의 상황 속에서 칼리프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가장 강력한 세력은 메카의 명문 씨족, 곧 시리아 총독 무아위야가 이끄는 우마이야 가문이었다. 결정적 승부 없이 끝난 전투 이후, 양측은 부족 관례에 따라 중재를 통해 갈등을 풀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몇 달간의 협상 끝에 내린 중재 판결은 알리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무아위야는 즉각 자신의 군대에 의해 칼리프로 추대되었고, 이로써 우마이야 칼리프 제국(661~750)의 시대가 개막된다.

알리의 죽음, 그리고 시아파와 수니파의 기원

알리는 같은 해, 자신의 옛 지지자들이었던 하리지파('탈주자들을 의미하는 카리지파')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흥미로운 점은 시아파와 수니파 어느 쪽도 이 초기 시대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아파는 알리의 후손들이 그들의 종친인 아바스 왕조와 결별하면서 태어났다. 아바스 왕조는 알리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손자인 후사인이 680년 이라크의 우마이야 총독에 의해 살해된 사건에 대한 '복수'를 명분으로 삼아 권력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한편 수니파는 예언자의 시절과의 정신적 연결 고리를 찾으려 했던 신흥 개종 사회들에서 주로 비롯된 운동으로, 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