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메리카에 상륙하는 필그림 아버지들(The Landing of the Pilgrim Fathers in America), 안토니오 지스베르트 페레즈(Antonio Gisbert Perez), 1886년. 마드리드 스페인 상원 소장 • 위키미디어 커먼즈
"한 척의 배, 메이플라워호; 한 해, 1620년; 하나의 명절, 추수감사절; 하나의 유토피아, '언덕 위의 도시'; 그리고 영웅들, 필그림 파더스. 바로 여기에 미국의 신화적 탄생을 이루는 재료들이 있다." 역사학자 베르트랑 반 라임베케(Bertrand Van Ruymbeke)는 저서 미합중국 이전의 아메리카(America before the United States)에서 이렇게 적었다.
실제로 메이플라워호 순례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18세기 말까지 기록 속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 이야기는 미국 정체성의 상징이자 기원 신화로 격상되었다. 이후 이 서사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먼저 미국 독립전쟁(1775~1783)에서 비롯된 정치적 자유의 이상을 구현했고, 남북전쟁(1861~1865) 시기에는 노예제에 맞선 북부 주들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대변했다. 문제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탄 102명의 승객이 뉴잉글랜드에 도착해 정착한 사건은 당시에는 극히 주변적인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에피소드는 어떻게 세계 최강국의 건국 신화로 올라섰을까?
버지니아가 아닌 뉴잉글랜드로
1620년, 잉글랜드 분리주의 청교도들은 자국의 식민 회사 중 하나인 플리머스 회사로부터 버지니아 내 영토를 매입했다. 여기서 청교도란 잉글랜드 국교회가 성경의 모범에 더 가깝도록 특정 의식들을 제거함으로써 개혁하고자 했던 기독교인들을 가리킨다. 이 열성적인 개신교도들은 그런 의식들을 쉽게 '교황주의적 잔재', 즉 가톨릭의 흔적으로 간주했다.
개혁 시도들이 번번이 실패하자, 그중 일부인 분리주의자들은 이제 개혁 불가능한 국교회 밖에서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세워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노팅엄셔의 작은 마을 스크루비 출신 청교도 35명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들은 더 성경적인 기준에 따라 운영되고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만 거주하는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신세계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윌리엄 브래드포드(William Bradford)의 인솔 아래 이른바 '순례자들'은 유럽을 고대 이집트에, 신세계를 새로운 약속의 땅에 빗댄 성경 출애굽기를 다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크루비의 청교도 35명에게는 신세계행을 원하는 67명의 '외부인'이 합류했다.
그러나 분리주의자들만 배에 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소수였다. 브래드포드가 자신의 저서 플리머스 식민지 역사에서 '외부인(strangers)'이라 부른 67명도 함께 항해에 나섰다. 이들은 사업을 후원한 투자자 회사의 지시에 따라 순례자들과 동승한 사람들로, 전염병이나 원주민의 공격 같은 돌발 상황이 닥칠 경우 원정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인력이었다. 이들의 동기는 무엇보다 물질적이었기 때문에 목적지 선정을 두고 금방 이견이 드러났다. 순례자들과 '외부인' 모두 많은 수가 버지니아보다 뉴잉글랜드에 정착하기를 원했다.
바로 이러한 긴장에 대응하기 위해 협약이 체결되었다. 1620년 11월 11일, 41명의 승객이 서명한 메이플라워 협약(Mayflower Compact)이 그것이다. 훗날 미국 공화주의를 예견한 선구적 계약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 이 협약은 미래의 식민지 안에서 최소한의 법적 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실용적 계약에 가까웠다. 서명자들은 '공동의 시민 정치체(civil body politic)'를 구성하고, 식민지에서 제정될 법률에 복종할 것을 서로 약속했다.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구원받다
오늘날 미국 매사추세츠주 남동부에 해당하는 케이프코드에 상륙한 승객들은 만 반대편에 플리머스 마을을 세웠는데, 이곳은 뉴잉글랜드 최초의 지속적 정착지가 되었다. 하지만 혹독한 겨울 탓에 새 공동체 주민의 절반 가까이가 몇 달 안에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때 원주민들과 맺은 우호 관계가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 정착민들은 왐파노아그(Wampanoag) 부족의 티스콴텀(Tisquantum)과 사모셋(Samoset)을 만났는데, 두 사람 모두 영어를 할 줄 알았다.
유럽인 선장에게 붙잡혀 옮겨진 티스콴텀은 인생의 일부를 잉글랜드에서 보냈다. 그는 정착민들의 통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밀을 심는 가장 좋은 방법'까지 가르쳤고, 브래드포드는 그를 진정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 불렀다. 1621년 가을 첫 수확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 기도를 위해 사흘간의 축제가 선포되었다. 성경 이야기와 칼뱅주의 선택 교리에 깊이 물든 정착민들은 브래드포드의 기록에 따르면 "주께서 그들의 모든 행위와 일에 함께하시며, 그 은혜가 그들의 오가는 모든 길에서 나타난다"고 확신했다. 이 선택의 징표처럼 플리머스 식민지는 번영하여 인구를 늘렸고, 주변에 덕스버리, 얄머스, 톤턴, 샌드위치 등 마을을 세우며 확장되다가 1691년 결국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흡수되었다.
다만 플리머스가 아메리카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였던 것은 아니다.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 식민지가 1607년에 이미 앞서 있었다. 또한 메이플라워호의 순례자들이 뉴잉글랜드 땅을 처음 밟은 유럽인도 아니었다. 주로 프랑스와 잉글랜드 출신의 많은 상인들이 이미 이곳을 탐험했고, 사가다호크라는 이름의 첫 식민지도 짧게나마 존재했었다. 따라서 필그림 파더스를 최초의 '미국인'으로, 존 퀸시 애덤스의 표현대로 '[우리] 종족의 창시자'로 묘사하는 시대착오적 서술은 버려야 한다.
박해받는 이들의 피난처
그럼에도 메이플라워호 에피소드가 결국 미국의 건국 신화가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 이야기는 프랑스 식민 모델과 달리 종교적 단일성을 강요하지 않고 실제로 다양한 교파가 공존하던 잉글랜드 식민지의 중요한 특징을 보여준다. 즉 잉글랜드 식민지는 구세계 박해 소수자들을 위한 최고의 피난처로 여겨졌던 것이다. 메이플라워호의 순례자들에 이어, 1630년부터 1640년 사이 약 13,000명의 청교도가 뉴잉글랜드, 주로 매사추세츠에 정착했는데, 이른바 '대이주(Great Migration)'가 바로 이 시기의 현상이다.
또한 17세기 내내 아메리카 연안은 수많은 종교 소수 집단을 맞이했다. 중부 식민지, 특히 펜실베이니아에 많이 정착한 퀘이커교도, 침례교도, 그리고 1662년 통일령(Act of Uniformity)이 잉글랜드에 엄격한 성공회 체제를 확립하면서 이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개신교 소수파들이 그 예이다.
북미로 떠나 박해를 피한 것은 청교도들만이 아니었다. 잉글랜드 가톨릭교도, 독일 루터교도, 프랑스 개혁교회(위그노) 신자들도 있었다.
역시 박해받던 잉글랜드 가톨릭교도들은 1632년 설립된 메릴랜드 식민지에서 피난처를 발견했다. 이러한 이주는 잉글랜드 소수 집단에 국한되지 않았다. 독일 루터교도들, 신앙 때문에 박해받은 알자스 메노나이트들, 그리고 1685년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한 뒤 조국을 떠난 수많은 프랑스 개혁교회 신자들이 대서양 건너 자신들의 교회를 세웠으며, 모라비아 형제단도 그러했다. 일부 유대인 공동체도 등장했다. 마지막으로 성공회는 잉글랜드만큼 지배적이지는 않았지만 특히 남부 식민지에서 여전히 강한 입지를 누렸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메이플라워호 이야기가 하나의 신화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신화는 미국 정체성을 강하게 형성한 두 가지 측면, 즉 청교도주의와 다원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가 있다. 1840년대에 전개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이론, 곧 미국 민족을 하나님의 새로운 선택받은 백성으로 규정한 사상은 여러 면에서 필그림 파더스와 그 청교도 동료들의 섭리주의(providentialism)의 계승자다. 동시에 메이플라워호는 종교 소수 집단을 받아들이는 관용, 곧 다원적 아메리카의 또 다른 특징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메이플라워호의 이야기는 역사학자 베르나르 코트레(Bernard Cottret)의 말처럼 "미래의 미국 국가의 사도행전"처럼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더 읽을거리
플리머스 식민지 연대기: 신세계 연대기(1620~1647), 윌리엄 브래드포드, Labor et Fides, 2004.
미합중국 이전의 아메리카: 잉글랜드계 아메리카의 역사(1497~1776), 베르트랑 반 라임베케, Flammarion,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