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미국의 탄생: 미국은 프랑스 땅이 될 수도 있었을까?

미국의 탄생: 미국은 프랑스 땅이 될 수도 있었을까?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 북아메리카 대륙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프랑스 땅'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이 영어권 국가로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자명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역사의 흐름이 조금만 달라졌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미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프랑스 식민 제국의 시작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식민 역사는 16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탐험가 사뮈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이 생로랑 강과 사그네 강이 만나는 지점에 머물며 프랑스와 원주민(아메리카 원주민) 간의 동맹을 체결하면서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이 동맹 덕분에 프랑스인들은 이 지역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고, 5년 후인 1608년에는 앙리 4세의 후원 아래 퀘벡 시를 건설했습니다.

이후 정착지는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1634년에는 트루아리비에르(Trois-Rivières), 1642년에는 몽트리올(Montréal)이 세워졌습니다. 프랑스인들은 생로랑 강 유역에서 출발해 서쪽으로는 오대호 방면까지, 남쪽으로는 미시시피 계곡까지 진출했습니다. 1699년에는 멕시코만 연안에 도달했고, 1718년에는 루이지애나의 미래 수도가 될 뉴올리언스(New Orleans)를 건설했습니다.

대륙의 절반을 차지한 프랑스 제국

1700년 무렵 프랑스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비해 늦게 출발한 식민 개척의 격차를 만회했고, 동시에 동부 해안에 고립된 영국 식민지들보다 우위를 점했습니다. 프랑스의 영토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절반 가까이 뻗어 영국령 식민지들을 포위하는 형세였습니다. 이 거대한 제국은 네 개의 핵심 식민지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습니다. 바로 뉴펀들랜드(Newfoundland), 아카디아(Acadia), 캐나다(Canada), 그리고 루이지애나(Louisiana)입니다. 북아메리카는 곧 프랑스의 대륙이 되려는 순간에 있었습니다.

제국의 쇠퇴, 위트레흐트 조약(1713)

그러나 예상을 깨고, 18세기는 프랑스의 북미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스페인 왕위계승전쟁(1701~1714) 중에 체결된 1713년 위트레흐트 조약은 영국의 패권을 공식화했습니다. 프랑스는 아카디아, 뉴펀들랜드, 허드슨만 지역을 영국에 할양해야 했습니다. 루이 14세는 식민지를 내주더라도 유럽에서의 프랑스 패권을 지키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여전히 생로랑 강에서 루이지애나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분수령은 7년 전쟁의 종식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1763년 파리 조약, 프랑스의 완전한 퇴장

1763년 체결된 파리 조약으로 북아메리카의 프랑스 제국은 완전히 해체되었습니다. 캐나다와 루이지애나 동부는 영국에 넘어갔고, 뉴올리언스와 미시시피 강 우안은 스페인에 할양되었습니다. 결국 프랑스는 대륙에서 축출되어, 북아메리카에 남은 영토는 생피에르미클롱(Saint-Pierre-et-Miquelon)이라는 작은 섬들뿐이 되었습니다.

대승을 거둔 영국은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진정한 패권을 누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 패권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773년, 식민지 주민들의 저항이 본격화되면서—바로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북아메리카의 운명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