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군주 중 한 명인 왈라키아 공작 블라드 3세, 흔히 '드라큘라'로 불리는 인물은 대체 어떻게 생을 마감했을까요?
1476년 겨울, 전장에서 끝난 삶
블라드 3세의 최후는 정확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1476년 말 오스만 제국(터키)군과의 전투 중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그가 깊이 신뢰하던 부하 중 메메드 2세에게 매수된 배신자의 밀고로 목숨을 잃었고, 검에 베여 참수당했다고 합니다. 시신에서 분리된 머리는 방부 처리되어 술탄에게 보내졌습니다.
스나고프 수도원의 전설
전통에 따르면 블라드는 스나고프 수도원(Snagov Monastery)의 교회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최종 안식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33년, 충격적인 발굴 성과
1933년, 고고학자 디누 V. 로세티(Dinu V. Rosetti)와 역사가 조르주 D. 플로레스쿠(George D. Florescu)는 전설 속 드라큘라의 무덤으로 여겨지는 자리 아래에 있는 무덤을 발굴했습니다. 놀랍게도 전설의 무덤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아래에서 관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관 속에는 벨벳 의복을 입고 얼굴에 비단 천을 덮은 남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신은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단 몇 분 만에 분해되어 버렸습니다. 학자들은 이 유해가 바로 공작(보이보드)의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얼굴을 덮은 비단 천의 비밀
시신의 얼굴이 천으로 덮여 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터키군은 블라드의 얼굴과 두피의 피부를 벗겨 솜을 채워 방부 처리했는데, 바로 이 소름 돋는 전리품이 메메드 2세에게 헌상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러한 사실은 유해의 얼굴 위에 베일이 덮여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 줍니다.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
그러나 이 시신이 실제 블라드 3세의 유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가설에 따르면 그는 코마나(Comana)의 교회 혹은 터르고소레(Târgșor)의 교회에 묻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드라큘라의 최종 안식처는 오늘날까지도 역사의 베일에 싸인 채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