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은 온도계(1714년 다니엘 파렌하이트의 발명품) • 위키미디어 커먼즈
17세기 초, 산토리오 산토리오(Santorio Santorio)는 이탈리아 의학계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크로아티아에 정착해 의술을 시작했고, 이후 베네치아로 옮겨 활동했으며, 1611년부터 1624년까지 파도바 대학교에서 의학을 가르쳤다. 말년에는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가 은거하다가 1636년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측정에 일평생을 바친 그 덕분에 그는 실험 의학의 창시자 반열에 올랐다. 그의 연구 대부분은 자신의 체중, 음식 섭취량, 배설량 같은 생리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위해 저울과 맥박 빈도 측정기인 '펄솔로기움(pulsologium)' 등 정밀 계층 기구를 직접 개발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온도계였다.
그보다 몇 해 앞선 1592년부터 1603년 사이, 갈릴레이는 먼저 선례를 남긴 바 있다. 열에 민감한 액체를 담은 유리관으로, 온도에 따른 액체의 팽창과 수축에 맞춰 유리 구슬이 오르내리는 장치였다. 그러나 지금 '온도 검지기(thermoscope)'라 불리는 갈릴레이의 장치에는 눈금이 없었고, 실외에서만 사용 가능했다. 산토리오는 눈금이 새겨진 최초의 온도계를 개발하고, 이를 체온 측정이라는 의료 목적으로 활용한 첫 번째 인물이 된다.
입으로, 손으로
산토리오는 1612년 출판된 『갈레누스 의술 주석(Commentaria in artem medicinalem Galeni)』에서 이 발명을 공개했는데, 이 책의 출판 허가 연도는 1611년이었다. "제가 여러분께 소개할 놀라운 방법이 있습니다. 특수한 유리 기구로 세계 모든 지역과 장소의 공기의 차고 더운 정도를, 나아가 신체 모든 부위의 온도를, 나침반으로 각도를 재듯 하루 어느 때든 정확하게 잴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이자 발명가 조반니 프란체스코 사그레도 역시 1612년 6월 30일 친구 갈릴레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산토리오의 발명을 언급했다. "무라 씨가 장터에 다녀와 말하길, 산토리오 씨가 나침반처럼 차고 더운 것을 재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긴 관이 솟아 나온 유리 구슬 형태라고 묘사했습니다."
이후 1626년 출간한 저서에서 산토리오는 여러 형태의 '온도계'를 설명하고 삽화로 남겼다. '온도계(thermomètre)'라는 용어 자체는 같은 해 프랑스 예수회 신부 장 뢰르숑(Jean Leurechon)의 저작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가운데 하나는 환자의 호흡 온도를 측정해 심장의 열을 추정하는 용도였는데, 당시에는 숨이 심장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산토리오는 오늘날과 같은 구강용 온도계와 손에 쥐고 사용하는 온도계도 설계했다. 그는 작은 진자(펄솔로기움)가 10회 진동하는 동안 액체가 이동한 거리를 관찰해 온도 변화 폭을 측정했으며, 이 방식은 발열 여부를 판단하는 훌륭한 지표가 되었다.
이후 여러 발명가들이 온도계를 한층 발전시켰다. 1714년 다니엘 파렌하이트(Daniel Fahrenheit)는 더욱 정밀한 수은 온도계를 발명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온도 눈금을 고안했다. 같은 시기 네덜란드의 의학자 헤르만 부르하프(Herman Boerhaave)는 이 기구로 환자의 체온을 재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에는 카를 운더리히(Karl Wunderlich)의 발열 연구가 결실을 맺으면서, 온도계는 발열의 각 단계를 측정하는 필수 도구로 자리잡았고, 의료 현장 전반으로 그 사용이 확산되었다.
연표
1592년경
갈릴레이가 액체 물질을 이용해 온도 변화를 감지하는 장치를 발명하다.
1611년
산토리오가 체온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최초의 기구를 고안하다.
1666~1667년
옥스퍼드의 존 로크가 의료 목적의 실내 온도 관측을 실시하다.
1707년
스탄카리가 최초의 밀봉식 온도계를 만들다. 내부 기압을 낮춰 더 정확한 결과를 얻다.
1714년
다니엘 파렌하이트가 근대적 수은 온도계를 발명하고, 훗날 자신의 이름을 딴 눈금을 더하다.
1742년
안데르스 셀시우스가 물의 끓는점과 어는점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온도 눈금을 창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