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만 대군의 침공, 그리고 단 400명의 기병
1694년 6월, 오스만 제국의 동맹군인 크림 타타르족이 최소 4만 명(일부 자료는 7만 명으로 추정)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폴란드 영토를 침공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약탈과 약탈뿐 아니라, 당시 주력 부대가 튀르크군과 교전 중이었던 폴란드군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타타르 침입자를 막을 수 있는 병력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이들과 맞선 것은 겨우 400명의 폴란드 기병뿐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의 기병으로 불리던 날개 기사단(훈사리아) 100명, 그리고 갑옷을 두른 중기병인 '판체르니(pancerni)' 300명. 이 작은 부대를 지휘한 이는 콘스탄틴 자보로프스키였습니다.
전초전: 선제 돌격과 후퇴
1694년 6월 11일, 폴란드 기병대는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에 속한 호도우(Hodów) 마을 인근에서 700명 규모의 타타르 부대를 발견했습니다. 폴란드군은 즉시 돌격을 감행해 이들을 흩어버렸지만, 이 부대가 뒤따르는 거대한 군세의 선봉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적이 계속해서 전장에 몰려오자 영웅적인 폴란드 기병들은 마을 안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병들은 말을 내리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마을의 가옥들을 급히 요새화해 방어 거점으로 삼았습니다. 타타르족 역시 초기의 기습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공격에 나섰습니다.
6시간의 결사 저항
그러나 전황은 타타르족에게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6시간 동안 끊임없이 격렬한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그들은 결연하게 버티는 폴란드군에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탄약이 바닥난 뒤에도 폴란드군이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사용한 '총알'은 다름 아닌 적이 쏟아낸 타타르 화살촉, 즉 온전한 것과 부러진 것 모두였습니다.
"와서 우리를 무찔러 보라"
폴란드군의 저항을 꺾지 못한 타타르족은 폴란드어를 아는 동포들을 사절로 보내 방어자들에게 명예로운 항복을 제안했습니다. 그 답변은 고대 스파르타의 테르모필레 전투를 연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와서 우리를 무찔러 보라!"
이후 약 2,000명의 손실을 입은 타타르군은 폴란드 증원군의 도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고 더 이상 공격을 강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군세는 동쪽으로 물러났고, 곧 폴란드 영토에서 완전히 철수했습니다.
희생과 영예
폴란드군의 희생자는 약 100명에 달했으며, 전사하지 않은 날개 기사단 전원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중에는 용감한 지휘관 자보로프스키도 있었는데, 그는 전투 사흘 뒤 부상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폴란드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는 이 전투에 참여한 생존자와 전사자 모두에게 특별한 예우를 했으며, 전사자들의 유족을 후원했습니다. 호도우 전투는 오늘날까지 폴란드인들에게 깊은 경의를 받으며, 여러 '폴란드의 테르모필레' 중 하나로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