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여성 화가이자 자유로운 여성,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여성 화가이자 자유로운 여성,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자화상, 1790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소장 • WIKIMEDIA COMMONS

1790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18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Élisabeth Vigée-Lebrun, 1755~1842)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걷게 된 망명의 길 위에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다.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된 이 작품은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당시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볼수록 깊은 매력을 발산하는 그림이다.

왕비의 '화가' 친구

언뜻 보면 이 아름다운 그림은 우아하고 매력적인 여성 화가가 다른 여성(배경 캔버스에 스케치된 얼굴)의 초상을 그리는 장면을 담고 있다. 이 독특한 구도 속에서 관람객은 일종의 모델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의 표현을 빌리자면 '화가'가 자신이 그려내고자 하는 모델, 곧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기 때문이다. 화가는 이 정교한 '그림 속 그림(mise en abyme)' 구조 안에서 그림을 바라보는 얼굴을 세심하게 살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은 그때까지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공식 초상화가였다. 이 그림이 완성되던 시점, 왕정은 격렬한 동요를 겪고 있었다. 1790년 프랑스의 정체는 아직 군주제였다. 비록 입헌군주제였지만, 왕은 아직 반혁명 세력 및 인접 외세와 결탁하려는 시도를 하기 전이었기에 왕관을 당당히 쓰고 있었다.

따라서 초상화가와 그녀의 가장 아끼던 모델 사이의 유대는 아직 화가의 경력에 치명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당시 왕의 자매들 역시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과 같은 상황에서 프랑스를 떠나 있었기 때문이다.

매우 정교한 연출

화가가 작업 중인 캔버스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 실루엣은 당대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왕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왕비는 이 여성 화가의 든든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1783년, 그녀는 왕비의 후원 덕분에 그전까지 사실상 남성만이 입회할 수 있었던 왕립 회화·조각 아카데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이러한 연출은 그림 앞에 선 모든 감상자에게 왕과 같은 자리를 부여한다. 이렇듯 간접적으로 화가는 1792년 군주의 주권을 대체하게 될 민주주의의 핵심 원리, 곧 국민 주권을 미리 예감한 셈이다.

여성 화가는 끝까지 구체제(Ancien Régime)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그러나 개인 차원에서, 노골적인 정치적 행보를 밟지 않으면서도 그녀는 보수적 예법의 한계를 거듭 넘어섰다. 동시대 비평가들이 그녀를 '자웅동체 괴물'이라 조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유럽 전역에서 뛰어난 경력을 쌓았으며 충실한 모성 역시 실현했다. 여성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다는 당대의 편견을 의식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미지와 행동으로 그 반대를 증명하고자 노력했다. 인생의 고난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혁명에 가담한 미술상 남편 르브룅과의 이혼, 그리고 딸 줄리(1780~1819)의 요절이라는 시련마저 견뎌야 했다.

더 알아보기
자유, 평등, 배제: 혁명기의 여성 화가들(1770~1804), M.-J. 보네 지음, 방데미에르(Vendémiaire), 2013.

예술가인 동시에 어머니로서
피렌체의 자화상 1년 전에 제작되어 그것과 짝을 이루는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자화상은 이러한 이중의 야망, 즉 어머니이자 예술가라는 두 신분을 강제로 분리당하는 것에 대한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의 저항을 표현한다. 그녀의 눈에, 그리고 그녀의 그림 속에서 그녀는 단 하나의 존재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어떤 것도 희생하지 않는, 비범한 재능을 지닌 여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