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피자의 여왕 마르게리타 — 이탈리아 국민 음식이 탄생한 숨은 이야기

피자의 여왕 마르게리타 — 이탈리아 국민 음식이 탄생한 숨은 이야기

피자 장수. F. 팔리치(F. Palizzi) 삽화, 1858년 • 위키미디어 커먼스(Wikimedia Commons)

1889년,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와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공식 방문합니다. 도심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어느 빵집에서 풍겨오는 고소하고 알싸한 냄새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하지만 궁정 예법상 길가의 음식을 맛볼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사보이아 왕가의 수석 주방진은 왕 부부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나폴리의 피제리아 ‘피에트로 에 바스타 코시(Pietro e Basta così)’의 피자 장수 라파엘레 에스포지토(Raffaele Esposito)를 왕 부부가 머무르던 카포디몬테 왕궁의 주방으로 불러들입니다.

에스포지토는 세 가지 피자 시식을 준비했습니다. 첫 번째는 ‘마스투니콜라(mastunicola)’, 즉 ‘마에스트로 니콜라’라 불리며 ‘니콜라 삼촌’으로 번역되는 피자로, 흰 반죽 위에 라드, 양 치즈, 바질, 후추를 올렸습니다. 두 번째는 토마토와 멸치를 얹은 피자였고, 마지막은 토마토, 모차렐라, 바질로 완성한 피자였습니다. 다음 날 피자 장수는 왕실 식사 담당 총책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게 됩니다. “친애하는 라파엘레 에스포지토 각하, 귀하께서 여왕 폐하께 준비하신 세 가지 피자 모두 매우 훌륭했다는 점을 확인해 드립니다.”

먹을 수 있는 깃발

기록에 따르면 세 가지 피자를 모두 즐긴 여왕은 특히 세 번째 피자에 마음을 빼앗겼고, 이에 대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기 위해 나폴리 출신 요리사는 이 요리의 이름을 ‘피자 마르게리타’로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이름은 나폴리 장인이 피자를 내놓은 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원래 이 피자에는 얇게 썬 모차렐라가 데이지 꽃잎처럼 동그랗게 배열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마르게리타(margherita)’는 이탈리아어로 데이지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피자에는 정치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이 요리의 재료들은 이탈리아 국기를 이루는 색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마토의 붉은색, 모차렐라의 흰색, 그리고 바질의 초록색이 그것입니다.

통일된 이탈리아 안에서, 역사적으로 나폴리의 가장 가난한 이들만 먹던 음식이었던 피자는 전국으로 퍼져나가 그야말로 대표적인 국민 요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실제로 움베르토 1세와 마르게리타의 나폴리 방문은 1870년 로마가 이탈리아 왕국에 병합되며 국가 통일의 긴 여정이 막을 내린 지 겨우 19년 뒤에 일어났습니다. 새로 세워진 국가는 상징을 건설함으로써 이탈리아인들의 일체감을 키워야 했고, 그 과정에서 미식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리하여 통일 이탈리아의 틀 안에서 피자는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 최고의 국민 요리가 되었습니다.

피자 대중화에 마르게리타 여왕이 한 역할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여왕은 오랫동안 ‘메이드 인 이태리(made in Italy)’의 확산에 헌신했습니다. 패션과 미식 분야에서 프랑스의 패권에 맞서고 새 국가의 스타일을 재확인하기 위해, 그녀는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만든 의상과 보석을 착용했고 현지 생산품을 소비했습니다. 동시에 평민과 가까운 이미지를 스스로 연출하기도 했는데, 1889년 나폴리 방문 당시 여왕이 보통 여인처럼 손으로 닭다리를 집어 든 일화가 전해질 정도입니다. 그 뒤로 누군가 예법을 어기면 “마르게리타 여왕도 치킨은 손으로 드신단다”라는 말이 따라붙곤 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의 초대 왕비는 때로 궁정 예법을 희생하면서까지 새 국가의 커뮤니케이션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이탈리아의 색을 지닌 맛있는 요리가 성공하지 못할 리 없었습니다.

토마토를 둘러싼 선입견

주목할 점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피자의 정체를 규정한 결정적 재료가 바로 토마토라는 사실입니다. 흰 포카차(focaccia)는 아득한 옛날부터 존재했지만, 아메리카 대륙에서 넘어온 이 열매의 사용은 훨씬 최근의 일입니다. 갖가지 편견이 보급을 가로막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토마토를 가지과의 독초인 만드라고라(mandrake)와 연결 지었고, 어떤 이들은 에덴동산의 금단의 열매로, 또 어떤 이들은 죄를 부르는 최음제로 여겼습니다. 게다가 토마토를 먹으면 제정신을 잃거나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믿음까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남부 이탈리아에서는 18세기에 토마토가 귀족 정원의 관상용 식물이자 화려한 테이블 장식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 열매를 식탁에 올린 것은 굶주림에 몰린 서민 계층이었고, 그들은 불신을 내려놓고 토마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1889년 당시에는 ‘흰’ 피자, 즉 토마토 소스를 깔지 않은 피자가 여전히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는데, 당시 출간된 여러 요리책이 이를 방증합니다. 오늘날 ‘붉은’ 버전이 원형을 대체하게 된 데에는, 마르게리타 여왕의 호의적인 중재가 큰 몫을 했을 것입니다.

나폴리 가난한 이들의 음식

온 이탈리아를 정복하기 전, 피자는 나폴리 노동 계층의 먹거리였습니다. 소설가 마틸데 세라오(Matilde Serao)는 저서 『나폴리의 배(Il Ventre di Napoli)』(1884)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피자 장수는 밤마다 무거운 반죽으로 둥근 피자를 수없이 빚어낸다 […] 거의 날 것에 가까운 토마토에 오레가노, 마늘, 피망을 올린 것이다. 이렇게 여러 조각으로 나눈 피자는 하루 종일 거리를 누비는 소년들에 의해 한 솔도(soldo)에 팔려 나간다. [피자는] 추위에 얼고, 뙤약볕에 누렇게 바래고, 파리들이 앉는다.” 식사는 양배추와 멸치 튀김으로 마무리되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