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한국전쟁: 세계가 숨을 죽인 3년, 발발부터 판문점 휴전까지

한국전쟁: 세계가 숨을 죽인 3년, 발발부터 판문점 휴전까지

1950년 6월, 한반도를 집어삼킨 전쟁

1950년 6월 북한의 남침으로 한반도는 사실상 통째로 적의 수중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다. 1949년 소련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과 마오쩌둥(모택동)의 중국 대륙 장악이라는 공산 진영의 연이은 승리를 이미 겪고 있던 미국은, 새로운 공산화의 확산을 더는 좌시할 수 없었다.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승자 맥아더 장군에게 반격을 맡겼고, 그 결과 같은 해 9월 서울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다.

16개국 유엔군의 참전과 중국의 기습 개입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한 16개국이 파견한 유엔군의 지원 아래, 11월에는 북한 지역이 거의 점령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중국이 공식적인 개입을 부인한 채 대규모 병력을 은밀히 남하시키면서 전세는 급격히 역전되었고, 유엔군은 다시 한반도 남부로 밀려나고 말았다.

핵무기 카드와 냉전의 도래

핵무기 사용까지 주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맥아더는 결국 1951년 4월 소환되었다. 인류가 심연의 가장자리에 섰던 그 순간, 세계는 '공포의 균형' 위에 세워진 냉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국제 질서를 목격하게 되었다.

38선의 참호전, 그리고 굳어버린 휴전

이후 기동전은 38선을 따라 벌어지는 끝없는 참호전으로 변질되었고, 그 전선에서는 영웅적 희생과 비인간적 잔혹함이 뒤섞여 있었다. 결국 전쟁의 종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술이 아니라 '지휘관의 교체'였다. 트루먼 대통령의 물러남과 스탈린의 죽음이 계기를 제공했고,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체결된 정전협정으로 전쟁 직전의 원상태로 회귀했다. 이 협정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즉 한반도는 엄밀히 말해 아직도 휴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인구의 10%를 잃은 민족, 그리고 두 개의 길

한국인들은 군사 작전과, 남과 북, 친일·반공 협력자와 저항자, 유산층과 빈민층이 얽힌 내전 속에서 인구의 10%를 잃는 참혹한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한국인들은 절망에서 태어난 듯한 강렬한 에너지로 재건에 매진했다. 북의 강제적 국가주의와 남의 폭발적 자본주의는 겉으로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집착이 낳은 양면이다.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또 다른 한국전쟁은 피하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전쟁이 재발한다면 그것은 집단적 자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