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칸가소(Cangaço): 브라질 북동부 세르탕을 휩쓴 사회적 도적들의 역사

칸가소(Cangaço)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 특히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브라질 북동부에서 번성한 사회적 도적(social banditry) 운동이다.

칸가소(Cangaço): 브라질 북동부 세르탕을 휩쓴 사회적 도적들의 역사

칸가소란 무엇인가?

칸가소는 19세기 마지막 수십 년부터 20세기 전반기까지 브라질 북동부의 세르탕(sertão), 즉 건조한 내륙 지대에서 성행한 사회적 도적 운동이다. 칸가세이루(cangaceiro)라 불린 이들은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반유목 생활을 했다. 무리를 지어 생활했으며, 무두질한 가죽옷을 입고 소총, 큰 칼(페시레이라), 단검으로 무장했다. 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몸에 묶어 지니고 다녔는데, '칸가소'라는 이름은 바로 짐과 식량을 몸에 걸치고 다니던 이 독특한 방식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칸가세이루, '브리야치'

칸가소 활동에 관한 초기 역사 기록 중에는 '브리야치(Brilhante)'로 알려진 제수이누 알베스 지 멜루 칼라두(Jesuíno Alves de Melo Calado)의 행적이 있다. 그는 1870년대에 칸가소 도적으로 활동했으며, 그를 중심으로 수많은 낭만적인 민담과 전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진정으로 큰 명성을 얻고, 북동부 사회에 가장 큰 공포와 영향을 남긴 것은 20세기에 활동한 칸가세이루들이었다.

가뭄과 콜로넬 정치 — 칸가소의 배경

칸가소의 발생은 브라질 북동부를 오랫동안 괴롭혀 온 경제적·사회적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1877년과 1915년의 대가뭄을 비롯한 장기 가뭄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많은 이들의 강제 이주를 초래했으며, 남겨진 사람들 사이에는 극심한 빈곤이 번져갔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혼란 속에서 공화정 시기에는 후원주의(clientelismo)와 콜로넬리즘(coronelismo) 형태의 정치가 자리 잡았다. 즉, 가난하고 절박한 민중이 이 지역의 대지주인 '콜로넬'들에게 직접 의존하는 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람피앙과 전성기의 칸가세이루들

1920년대부터 1930년대 사이, 북동부 곳곳에서 콜로넬 체제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고 칸가소도 그 흐름 가운데 하나였다. 비르굴리누 페헤이라 다 실바(Virgulino Ferreira da Silva), 일명 람피앙(Lampião), 크리스티누 고메스 다 실바 클레투(Cristino Gomes da Silva Cleto), 일명 코리스쿠(Corisco), 그리고 조제 리베이루 필류(José Ribeiro Filho), 일명 제 세레누(Zé Sereno) 등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칸가세이루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무리를 이끌고 세르탕의 특정 지역을 근거로 활동했으며, 주 공식 군대와 자구누(jagunço, 농장주들이 고용한 용병) 부대와 격돌했다.

칸가소의 종언

1938년 세르지피 주에서 람피앙이 정부군에 의해 사살되면서 칸가소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이후 코리스쿠와 제 세레누 등 남은 칸가세이루들은 죄를 면제받고 사면받는 조건으로 바르가스 신국가(Estado Novo) 정권의 군대에 투항했다.

글: 클라우디우 페르난데스(Me. Cláudio Ferna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