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란 어떤 나라였는가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반도 북동부, 테르마이코스만 끝자락에 자리한 고대 평야 왕국이다. 기원전 4세기에는 그리스 전역에 대한 패권을 장악했고, 나아가 인더스 강 유역까지 영토를 확장하며 단명하지만 강력한 제국을 세웠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헬레니즘 시대라 불리며, 고대 그리스 문명이 동방의 광대한 지역으로 전파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선사 시대와 마케도니아인의 기원
선사 시대 마케도니아의 문화적 유대는 주로 그리스와 아나톨리아(소아시아)와 연결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마케도니아인'이라 칭한 민족은 기원전 700년경부터 기록에 등장하는데, 알리아크몬 강 유역의 본거지에서 출발하여 페르디카스 1세와 그의 후손들이 이끄는 가운데 동쪽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이 민족의 기원과 정체성은 오늘날까지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이들을 ethnically 그리스인으로 봐야 한다는 입장과, 그리스인이 아니거나 기원 자체를 특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논쟁의 핵심 중 하나는 이들이 기원전 5세기 이전에 그리스어의 한 형태를 사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기원전 5세기 무렵 마케도니아 지배층은 고대 그리스어의 한 형태를 받아들였고 통일된 왕국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아민타스 3세와 왕국의 통합
아테네가 해안 지역을 장악하면서 마케도니아 지배층은 대외 팽창 대신 내륙 고지대와 평야 지대를 하나로 묶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제는 결국 아민타스 3세(재위 약 기원전 393~370/369년)의 손에 의해 완수되었다.
필리포스 2세, 그리스의 패자가 되다
아민타스의 두 아들 알렉산드로스 2세와 페르디카스 3세는 각각 짧은 재위를 보냈다. 셋째 아들 필리포스 2세는 처음에 조카인 페르디카스의 어린 후계자를 대신해 국정을 대행했으나, 질서를 회복한 뒤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재위 기원전 359~336년). 그는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최강국으로 성장시키며 왕국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제국의 분열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 즉 알렉산드로스 대왕(재위 기원전 336~323년)은 아케메네스(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마케도니아의 지배 영역을 나일강과 인더스강까지 뻗쳤다. 그러나 그가 바빌론에서 사망하자 장군들은 제국의 사트라피(주)들을 나누어 차지했고, 이를 발판으로 제국 전체를 두고 다투었다. 기원전 321년부터 301년까지 전쟁이 거의 끊이지 않았으며, 마케도니아 본토는 여전히 제국의 심장부였기에 그 소유권을 두고 그리스 통치권과 함께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안티파트로스(알렉산드로스의 유럽 총독)와 그의 아들 카산드로스는 카산드로스가 죽을 때까지(기원전 297년)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과 함께 마케도니아는 내전에 빠졌다. 데메트리오스 1세 폴리오르케테스의 6년 통치(기원전 294~288년) 이후에도 내분은 계속되었고, 북쪽에서 침입한 갈라티아인들의 약탈까지 더해져 혼란은 극에 달했다. 기원전 277년, 데메트리오스의 유능한 아들 안티고노스 2세 고나타스가 드디어 갈라티아인을 격퇴하고 마케도니아 군대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의 통치 아래 안정된 군주제가 확립되었으며, 이렇게 시작된 안티고노스 왕조는 기원전 277년부터 기원전 168년까지 마케도니아를 다스렸다.
로마와의 충돌, 그리고 속주로의 편입
필리포스 5세(재위 기원전 221~179년)와 그의 아들 페르세우스(재위 기원전 179~168년) 시대에 마케도니아는 로마와 정면충돌하여 패배했다(마케도니아 전쟁). 로마 지배 초기인 기원전 168~146년에는 공동의 유대 없는 네 개의 독립 공화국으로 분할되었으나, 기원전 146년에 이르러 네 개 구역을 행정 단위로 하는 로마 속주로 재편되었다.
이후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지키는 방벽 역할을 수행했으며, 북방 국경에서는 인접 부족들과의 전투가 잇달았다. 서기 400년경에는 모이시아 관구 산하의 '마케도니아'와 '마케도니아 세쿤다(Macedonia secunda)'라는 두 개의 속주로 편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