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성상파괴운동(이코노클라즘)이란? 비잔티움 제국을 뒤흔든 성상 논쟁

성상파괴운동이란?

성상파괴운동(Iconoclasm, 이코노클라즘)은 8~9세기 비잔티움 제국에서 일어난 정치·종교적 분쟁으로, 종교적 성격을 지닌 성상과 이미지에 대한 공경·숭배 행위에 반대한 운동입니다. 이 갈등은 주로 레오 3세(717~741년 재위)와 그의 손자 테오필로스(829~842년 재위)의 통치 기간에 전개되었습니다.

성상파괴파의 주된 관심은 정치적·종교적 측면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들과의 유사성이 커질수록 가톨릭 신앙이 약화된다고 판단했으며, 더욱이 수도원·교회·신전의 건축과 함께 제국 전역으로 확장되던 교회의 권력과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깊이 경계했습니다.

'성상파괴자(Iconoclast)'라는 명칭은 그리스어로 '이미지'를 뜻하는 eikon(에이콘)과 '부수다'를 뜻하는 klastein(클라스테인)이 결합된 용어로, 문자 그대로 '성상을 부수는 자'를 의미합니다. 즉, 성상파괴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인, 천사, 종교 지도자 등의 형상을 매개로 하는 신앙 행위에 반대했습니다.

오늘날에도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 일부 종교 전통 속에서 성상 파괴의 흔적과 논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상파괴운동 개요

730년, 이사우리아 출신 황제 레오 3세(717~741년 재위)는 사람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해야 하며 형상은 배척해야 한다고 선언하며 성상파괴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우상 제작은 금지되었고, 이에 따라 성전·교회·수도원에 있던 각종 종교 성상(회화, 프레스코화, 모자이크 등)이 파괴되었습니다. 아울러 성인, 천사, 깨달은 자들의 형상을 공경하던 성상옹호파(iconophile), 대표적으로 수도사들은 고문과 박해를 당했으며 상당수가 추방되었습니다.

참고로 비잔티움 제국은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면서 탄생했습니다.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둔 동로마 제국과 수도 밀라노를 둔 서로마 제국으로 나뉜 것인데, 이 가운데 동방의 기독교인들이 성상파괴운동의 주체 세력이었습니다.

레오 3세에 이어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5세 역시 754년 제국 전역에서 성상 파괴를 확산시키며 성상파괴 사상을 적극적으로 전파했습니다. 이후 니케아 제2차 공의회(787년)에서 성상 공경이 다시 허용되면서 첫 번째 성상파괴 시기가 막을 내렸으나, 성상 논쟁은 이후에도 이어져 843년에야 완전히 종식되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비잔티움 제국
  • 비잔티움 미술
  • 성미술이란?
  • 니케아 공의회
  • 동서 교회 대분열
  • 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