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르됭 전투의 지휘관, 로베르 조르주 니벨

베르됭 전투의 지휘관, 로베르 조르주 니벨

베르됭 전투

1916년 5월 1일, 니벨(Nivelle)은 필리프 페탱(Philippe Pétain)을 대신하여 베르됭의 새로운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조프르(Joffre) 원수의 지명으로 부임한 그는, 페탱이 끊임없이 추가 병력만을 요청하던 기존 방식에 한계를 느꼈습니다.

새로 부임한 니벨 사령관의 방침은 달랐습니다. 병력 수를 줄이는 대신, 더 많은 물자와 정예 포병 화력에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의 교착 상태를 돌파하기 위한 실질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두오몽 요새 탈환 작전

니벨과 그의 부관인 기욤마(Guillaumat) 장군은 강력한 시작을 원했습니다. 그들은 49세의 노련한 장교였던 샤를 망쟁(Charles Mangin)에게 두오몽(Douaumont) 요새 탈환 임무를 맡겼습니다. 이 요새는 독일군에게 함락된 지 약 3개월 만에 프랑스군의 집중 포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군용 비둘기, 생명줄이 되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전화선은 더 이상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습니다. 통신망이 두절된 상황에서 긴급 메시지를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군용 비둘기였습니다. 이들은 독가스가 자욱한 전장 상공을 날아 비둘기장으로 귀환했고, 배를 채운 뒤 곧바로 다음 방어선에 최전선의 상황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베르됭 전투에서 비둘기는 인간보다도 신뢰할 수 있는 통신 수단으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