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모사드의 복수는 25년을 넘어 이어졌다… '신의 분노' 작전

모사드의 복수는 25년을 넘어 이어졌다…  신의 분노  작전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이 뮌헨 올림픽에 참가한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해 11명을 살해했다. 이런 도발에 이스라엘이 조용히 넘어갔으리라고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었다.

'X위원회'와 신의 분노 작전

학살 사건 이틀 후,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 총리는 대응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X위원회'를 구성했다. 국방장관 모셰 다얀, 테러 대책 고문 아론 야리브, 모사드 국장 즈비 자미르가 위원회에 참여했으며, 이들이 '신의 분노(Wrath of God)'라는 코드명의 작전을 총괄했다.

1단계로 표적 명단이 작성되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조직 '검은 9월(Black September)'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소속 인물 20~35명의 이름이 올랐다. 임무의 실행은 물론 모사드에 맡겨졌다.

타격팀은 에이전트 하라리가 지휘했다. 흥미로운 점은, 습격 몇 시간 전에 표적의 가족에게 꽃다발과 조문 메시지가 전달되었다는 사실이다.

첫 번째 타격

첫 번째 타격은 1972년 10월 16일 이탈리아 주재 PLO 대표에게 가해졌다. 이스라엘 측은 그가 '검은 9월'의 일원이기도 하다고 판단했다. 와엘 즈바이터는 12발의 총탄에 쓰러졌다. 이어 12월 8일에는 프랑스 주재 PLO 대표 마흐무드 함샤리가 추적 끝에 폭탄으로 살해되었다.

1973년 1월 24일 저녁에는 요르단인 후세인 알 바시르, 즉 키프로스 주재 파타 대표도 폭탄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 측에 따르면 그는 '검은 9월'의 일원일 뿐만 아니라 소련 KGB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인물이었다.

1973년 4월 6일에는 베이루트 대학 교수 바실 알 쿠바이시가 파리에서 처형되었다. 이스라엘 측은 그를 '검은 9월'의 병참 책임자로 보고 있었다.

특수부대의 개입

모사드의 표적 중 세 명은 레바논의 경비가 삼엄한 복합 시설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작전은 이스라엘군 특수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 샤예렛 13, 사예레트 차남힘이 담당했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고무보트를 타고 레바논 해안에 상륙했고, 모사드 요원의 안내를 받아 민간인 복장으로, 심지어 부르카를 입은 여장을 하기까지 하며 표적에게 다가갔다. 결국 그들은 '검은 9월' 작전 총책임자 무함마드 유세프 알 나자르와 PLO 고위 관료 카말 나세르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작전 과정에서 레바논 경찰관 두 명과 알 나자르의 아내, 한 명의 관광객도 함께 목숨을 잃었다. 사예레트 차남힘 소속 이스라엘 공수부대원들은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의 6층 규모 본부 건물을 점령해 파괴했으며, 이 과정에서 자국 병력 두 명을 잃었다.

이스라엘 특공대는 PLO의 무기고와 창고에 대한 기습도 감행했다. 이 공격에서 PLO 군은 매우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일부 자료에 따르면 사망자가 최대 100명에 달했다.

끝나지 않은 복수

모사드의 다음 표적은 자이아드 무하시로, 그는 아테네에서 폭탄으로 살해되었다. 로마에서는 '검은 9월' 소속 인물 두 명이 폭탄 공격으로 부상을 입었다. 이후 프랑스에서는 '검은 9월'의 알제리 출신 고위 인사 무함마드 부아디아가 처형되었다.

1979년 12월 15일에는 키프로스에서 팔레스타인인 두 명, 알리 살렘 아메드와 이브라힘 압둘 아지즈가 처형되었다. 1982년 6월 17일에는 이탈리아에서 PLO 고위 관료 나제이 마이어와 카말 후세인이 살해되었다.

1982년 7월 23일에는 PLO 관료 파들 다니가 파리에서 폭탄으로 살해되었고, 1983년 8월 21일에는 마문 메라이시가 아테네에서 모사드 요원 두 명에게 처형되었다.

1986년 6월 10일에는 PLO 사무총장 칼레드 아메드 나잘이 아테네에서 살해되었다. 같은 해 10월 21일에도 역시 아테네에서 문제르 아부 가잘라가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었다. 1988년 2월 14일에는 키프로스에서 아부 알 하산 카심과 함디 아드완이 살해되고 마르완 카나파미가 부상을 입었다.

'붉은 왕자' 사냥

이스라엘은 뮌헨 학살을 지휘한 테러 조직의 수장으로 믿어지는 인물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바로 '붉은 왕자(Red Prince)'로 불린 알리 하산 살라메였다. 그들은 마침내 노르웨이에서 그를 발견했지만, 1973년 7월 21일 오히려 무고한 모로코계 웨이터를 살해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모사드 요원 여섯 명이 체포되었으나 1975년에 석방되었다.

이스라엘은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1974년 1월에는 그가 스위스에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들이 감행한 공격에서 아랍인 세 명이 살해되었지만 '붉은 왕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런던에서 추적을 이어가던 이스라엘은 여성 암살자에게 요원 한 명을 잃기도 했다. 이 여성은 세 달 후 또다시 살해당했다.

스페인에서의 새로운 시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마침내 1979년 1월 22일, 살라메는 레바논에서 폭탄 공격으로 경호원 네 명과 함께 목숨을 잃었고, 무고한 시민 네 명도 함께 희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