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유토피아(Utopia)는 그리스어로 "존재하지 않는 곳(nowhere)"을 뜻하는 단어로, 작가이자 인문주의자, 정치가였던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가 저술한 책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메리카 대륙 발견 약 30년 후인 1516년에 출간되었으며,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작품의 줄거리와 특징
『유토피아』는 이성이 지배하는 가상의 공화국을 묘사하며, 당시 유럽 정치의 갈등과 혼란스러운 현실과 대비되는 이상향을 그려냅니다.
책 속에서 모어는 평화와 전쟁, 재정, 권력, 식민 지배, 경제 등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주제들을 가상의 섬이라는 배경을 통해 다룹니다.
잉글랜드의 외교관이었던 모어는 1515년 5월, 런던 상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플랑드르(Flanders) 협상 도중 틈틈이 『유토피아』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잉글랜드 왕국과 카스티야 왕자 카를(Charles) 사이에는 네덜란드가 잉글랜드산 양모 수입을 금지한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지만, 토머스 모어는 실제 협상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장면을 작품에 녹여냈으며, 이 책을 통해 헨리 8세 국왕을 비판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 역시 비판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모어가 상상한 섬은 시민들이 국가의 효율성을 누리는 정치적 이상뿐만 아니라, 종교 역시 사람들 사이의 이상적인 관계를 보여주는 완전한 사회로 그려집니다.
이 두 가지 모두 기독교를 전파한다는 명분으로 식민 지배를 동원하던 유럽의 현실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모어는 정복 욕망에 대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유토피아』가 집필된 것은 아메리카 발견 불과 24년 후, 이미 그 땅이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또한 저자는 군대, 그리고 신민들의 피를 대가로 정치가들에게 안겨지는 영광을 강하게 규탄합니다.
수많은 비판의 축 가운데 돈이 부추기는 부패 역시 모어의 예리한 시선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돈에 물들지 않은 관리자일수록 더 훌륭한 통치를 펼칩니다. 그래서 『유토피아』에서는 화폐와 물질적 부가 아무런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토머스 모어는 누구인가?
토머스 모어는 잉글랜드의 인문주의 작가이자 정치가입니다. 1478년 2월 7일, 런던의 한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라틴 학교에 다녔으나 12세 때 옥스퍼드로 진학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게 됩니다.
라틴어, 그리스어, 법학을 공부한 그는 법학을 전공했고, 1504년 잉글랜드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두 번의 결혼을 통해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1521년 기사 작위를 받았고, 1523년에는 서민원(House of Commons) 의장으로 올랐으며, 1525년에는 랭커스터 공작령 대법관(Chancellor of the Duchy of Lancaster)에 임명되었습니다.
1529년에는 랭커스터 공작령의 영주가 되었지만, 로마 가톨릭 교회와 결별한 헨리 8세 국왕의 직접적인 압박에 놓이게 됩니다.
국왕은 스스로 잉글랜드 교회의 최고 수장임을 선언하며 성공회(Anglican Church)를 창설했습니다. 이는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이혼을 실현하고 왕비의 시녀였던 앤 불린과 재혼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모어는 반역죄로 재판을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고, 1535년 7월 6일 처형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