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페르시아가 격돌한 메디크 전쟁은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분쟁으로, 페르시아 전쟁 또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라고도 불립니다.
메디크 전쟁의 원인
전쟁의 발단은 페르시아의 급격한 영토 확장에 있었습니다. 페르시아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들을 하나씩 정복해 나갔고, 결국 에게해 무역을 장악하게 됩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패권을 그리스인들은 좌시하지 않았고, 소아시아(아나톨리아) 지역을 둘러싼 양측의 충돌은 불가피해졌습니다.
참고로 '메디크 전쟁'이라는 이름은 의사들이 전투에 참전했기 때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들이 '메도-페르시아인', 즉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연합 세력으로 불렸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메디크 전쟁은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1차 메디크 전쟁 – 다리우스 시대 (기원전 490년)
첫 번째 시기는 다리우스 1세의 시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는 군대에 그리스 침공을 명령했고, 이로써 전쟁의 막이 올랐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전투는 마라톤 전투입니다. 전투가 벌어진 도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페르시아군이 수적으로 크게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연합군은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날 마라톤 경주의 이름도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알리기 위해 한 군인이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먼 거리를 달렸고, 소식을 전한 직후 심장 발작으로 숨졌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제2차 메디크 전쟁 – 크세르크세스 시대 (기원전 480년)
두 번째 시기는 크세르크세스의 시대입니다. 페르시아의 재침공을 우려한 그리스 도시들은 델로스 동맹(델로스 협약체)을 결성하여 방어력을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델로스'는 동맹의 본부가 위치했던 도시의 이름입니다.
다리우스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는 페르시아와 그리스 간의 전쟁을 이어갔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수사 조약, 즉 칼리아스의 화약이 체결되면서 페르시아는 소아시아에서의 그리스 세력을 인정하고 더 이상 그리스 영토를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는 무역 패권을 확보했고, 페르시아 제국은 서서히 쇠퇴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메디크 전쟁이 끝난 후, 이번에는 외세가 아닌 그리스인들끼리의 내전이 벌어집니다. 바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입니다.
델로스 동맹은 원래 그리스 도시들의 공동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아테네가 점차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며 다른 그리스 도시들을 희생시키기 시작하면서 본래의 목적을 잃어갔습니다. 이에 스파르타가 주도하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이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에 맞서게 됩니다.
전쟁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고, 스파르타는 고대 그리스의 패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