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958년 알제 봉기: 프랑스 제4공화국의 종말과 드골의 귀환

알제리 전쟁과 정치적 위기

1954년, 알제리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그러나 갈등이 격화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도 프랑스의 연이은 정부들은 제2차 세계대전 종식 이후 본격화된 탈식민지화 운동에 대해 적절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1958년 4월 26일, 수천 명의 시민이 '공공안전 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알제 거리로 나섰습니다. 같은 해 5월 8일, 르네 코티(René Coty) 대통령은 피에르 플랭(Pierre Pfimlin)에게 내각 조각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제4공화국은 알제리 전쟁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했고, 플랭은 알제리 독립 세력인 FLN(민족해방전선)과의 협상을 선호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주요 인물

  •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 르네 코티(René Coty)
  • 피에르 플랭(Pierre Pfimlin)
  • 자크 마쉬(Jacques Massu)
  • 라울 살랑(Raoul Salan)

1958년 알제 봉기: 프랑스 제4공화국의 종말과 드골의 귀환

봉기의 경과

알제리 주둔 군부는 새로 취임한 수상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살랑(Salan) 장군은 프랑스군이 참패했던 인도차이나의 디엔비엔푸 전투를 언급하며, 플랭의 외교 노선을 "디엔비엔푸식 외교"라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1958년 5월 13일, 참전 용사들이 '프랑스의 체제 변화'와 'FLN에 살해된 병사 추모'를 구호로 삼아 시위를 조직했습니다. 프랑스령 알제리 유지를 지지하던 알제의 학생들이 시위 행렬을 이끌며 총독부 건물 앞으로 몰려갔고, 시위대는 문을 지키던 공수부대원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여기에 마쉬(Massu) 장군과 살랑 장군 등 군 최고 지휘부마저 행렬에 합류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후 '공공안전 위원회(Comité de salut public)'라는 이름의 기구가 구성되었고, 이들은 장군들의 권위 아래 샤를 드골 장군의 집권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를 이끈 드골은 군부로부터 깊은 존경과 위상을 얻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본토에서도 특히 르몽드 신문을 중심으로 드골의 복귀론이 거론되고 있었으며, 코티 대통령 역시 자신의 자리를 드골에게 넘기는 데 긍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봉기의 결과와 제5공화국의 탄생

  • 5월 15일, 드골은 공개 성명을 통해 "공화국의 권력을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고, 5월 24일에는 공수부대가 현청을 점거하고 CRS(공화국안보경찰대)의 무장을 해제했습니다. 26일 밤부터 27일에 걸쳐 플랭 수상은 드골을 만났고, 사임을 결심합니다.
  • 플랭이 사임하자 드골은 6월 1일 수상으로 공식 지명되었고, 군부의 계획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직전에는 좌파 주도의 '공화국 수호' 시위도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6월 초, 드골은 알제리를 직접 방문했습니다.
  • 당시 사람들은 제4공화국의 종말을 목격했습니다. 1958년 9월 28일, 국민투표를 통해 제5공화국 헌법이 승인되었고, 대통령이 전권을 행사하거나 국민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강력한 대통령제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 1958년 12월 21일, 드골은 제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결국 제5공화국의 탄생은 알제리 전쟁과 1958년 5월 13일 알제에서 군부가 일으킨 쿠데타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