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소련(USSR)이란? 1922년 탄생부터 1991년 해체까지 역사 총정리

소련(USSR)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s)'의 약자로, 1922년 12월 30일에 창건되어 1991년 12월 26일에 해체된 국가입니다.

소련은 동유럽 절반과 북아시아 3분의 1을 차지한 15개 공화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주권 연방 국가로 존재했던 기간 동안 소련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이자 제2의 강대국이었습니다.

소련(USSR)이란? 1922년 탄생부터 1991년 해체까지 역사 총정리

소련의 역사

소련의 뿌리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1918~1921)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공식적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은 1922년 12월 30일, 소비에트 대회가 막을 내린 뒤 창설되었습니다. '소비에트'란 노동자, 군인, 농민을 한데 모은 평의회를 의미합니다.

소련(USSR)이란? 1922년 탄생부터 1991년 해체까지 역사 총정리

초기 연합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자카프카스(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네 개 공화국은 러시아 제국의 붕괴와 1917년 10월 혁명의 결과로 등장했습니다.

1922년부터 1991년까지 소련은 다음과 같은 15개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벨라루스
  • 우즈베키스탄
  • 카자흐스탄
  • 조지아
  • 아제르바이잔
  • 리투아니아
  • 몰도바
  • 라트비아
  • 키르기스스탄
  • 타지키스탄
  • 아르메니아
  • 투르크메니스탄
  • 에스토니아

이 15개 공화국은 아시아와 유럽 출신 최소 백여 개 민족 집단의 연합체였으며, 각 민족은 하나의 인민으로서 자결권을 보유했습니다.

연합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이후 재건 노력을 집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편 내전으로 인해 러시아의 공업 생산은 18%, 농업 생산은 30%나 감소했습니다.

이 분쟁으로 민간인과 군인을 포함해 약 90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의 종식과 함께 1917년 레닌이 도입했던 경제 노선도 새롭게 교체되었습니다.

소련(USSR)이란? 1922년 탄생부터 1991년 해체까지 역사 총정리
소련의 국장

소련의 경제

NEP(신경제정책)은 자본주의적 방식과 사회주의적 방식이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NEP는 레닌 사후 4년 뒤인 1928년, 스탈린이 트로츠키를 제치고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점부터 체제는 소련 공산당의 지휘 아래 순수한 사회주의 성격으로 변모합니다.

스탈린의 경제정책은 고스플란(Gosplan)이 감독하는 5개년 계획의 채택에 기반을 두었습니다. 고스플란은 소련 경제 전반을 설계하던 경제기획위원회였습니다.

스탈린의 지휘와 고스플란의 감독 아래 5개년 계획은 중공업 육성과 농업 집단화를 골자로 했습니다. 사유재산은 국영 협동조합과 국영농장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처음에 토지 집단화는 경작 수단을 갖추지 못한 농민들로 인해 농촌 지역에 큰 혼란을 낳았습니다. 소유 제도의 이러한 급격한 변화로 수천 명이 굶어 죽는 비극도 빚어졌습니다.

그럼에도 10년 만에 5개년 계획은 소련의 경제·사회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에너지, 자동차, 무기 생산이 늘었고 석유와 석탄 채굴도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의사 양성, 병상 확보, 도서관·학교 건립에 대한 투자도 함께 증가했습니다. 혁명 이전에는 소련을 구성하게 될 국가들에서 주민 1만 명당 640권의 책밖에 없었지만, 1939년에는 같은 인구당 8,610권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발전은 2,700만 명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버틸 수 있었던 결정적 토대로 평가됩니다.

같은 시기 스탈린의 반대파들은 숙청되거나 추방당했습니다. 덕분에 소련은 1929년 대공황과 1930년대 세계 불황의 직접적인 충격으로부터 상대적으로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러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를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고,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1,650만 명이라는 막대한 인명 손실을 입었습니다.

연합군 진영에서 함께 싸웠음에도 불구하고, 소련과 미국은 정치·경제 체제의 차이로 점점 멀어졌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계는 두 진영으로 나뉘게 되고, 이른바 냉전 시대가 열립니다.

베를린 장벽

사회주의 이념은 서유럽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맞서는 축이었습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극으로 세계가 분단되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베를린 장벽입니다.

장벽은 1961년 8월에 세워졌다가 1989년 11월에 무너졌습니다.

스탈린 이후의 소련

바로 이 시기부터 스탈린이 강요한 극단적 중앙집권화의 대가로 정치 체제가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스탈린은 권력 집중과 권위 남용으로 악명 높은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죽은 뒤 후계자가 된 니키타 흐루쇼프는 당의 개혁에 나섰고, 다른 나라들과의 조심스러운 개방을 모색했습니다.

흐루쇼프는 스탈린 통치 시기의 정치적 탄압을 세상에 알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당 회의 연설에서 그는 스탈린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자행했던 자의적인 체포와 암살 실태를 폭로했습니다.

이 시기는 도시 주거 시스템, 식량 생산, 소비재 공급의 붕괴로 점철되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의 쇠퇴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1980년대에 더욱 가속화됩니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

고르바초프 지도력의 상징으로 꼽히는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입니다. 두 정책 모두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개방을 목표로 추진되었습니다.

고르바초프 치세에 소련은 군비 지출을 줄였고,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원조와 정치적 개입도 축소했습니다.

소련의 해체

소련의 마지막 시기는 여러 공화국에서 잇따른 독립 운동으로 특징지어집니다. 그 결과 1991년 말, CIS(독립국가연합) 창설과 함께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습니다.

해체 당시 소련의 면적은 약 2,200만 제곱킬로미터, 인구는 2억 8,860만 명에 달했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러시아
  • 독립국가연합(CIS)
  • 소련의 해체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