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성 요한 기사단은 1530년 로도스섬에서 추방된 뒤 몰타에 정착했습니다. 이곳을 거점으로 기사단은 약 2세기에 걸쳐 오스만 제국과 그 동맹 세력에 맞서 싸웠지만, 1798년 나폴레옹의 프랑스가 보여준 압도적인 군사력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몰타 보병 연대의 탄생 (1776년)
1776년, 당시 기사단 총장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데 텍사다는 몰타 보병 연대 창설을 결정했습니다. 이 연대는 사실상 외인부대로, 유럽 각지에서 온 남성들로 구성될 예정이었습니다. 기사단 관계자들은 아비뇽, 코르시카, 마르세유 등지를 돌며 적극적으로 모병 활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입대한 1,200명 가운데 대다수는 현지 사회의 하층민, 범죄자, 다른 군대의 탈영병 등이었습니다. 상당수가 입대 직후 곧바로 탈영하는 바람에 모병 범위는 지중해의 다른 항구 도시들로 확대되었고, 대열 속에 그리스인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기사단은 몰타 현지인까지 모집했습니다.
프랑스식 편제와 요새 방어 임무
연대는 프랑스식 편제를 따랐습니다. 단일 대대로 구성되어 그렌디어 1개 중대와 머스킷 소총병 4개 중대를 두었으며, 총 병력은 500명이 넘었습니다. 훈련 수준과 사기가 높았던 이 부대는 티녜, 산탄젤로, 성 엘모(에라스무스), 리카솔리 요새의 경비를 담당했고, 일부 분견대는 수도 발레타에 주둔했습니다.
프랑스군의 상륙과 저항
프랑스군이 상륙하자 연대는 저항했습니다. 특히 티녜 요새 수비대는 프랑스군의 공격을 모두 격퇴하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발레타 분견대는 프랑스 포위군에 대한 결연한 반격에 참여했고, 다른 요새의 수비대들 역시 휴전 협정이 최종 체결될 때까지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의 몰타 정복 이후 포로로 잡힌 연대 병사들은 프랑스군 '몰타 군단'에 강제 입대하여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 참전하게 되었습니다.
몰타 보병 연대의 제복과 장비
병사들은 당시 전형적인 흰색 제복을 입었으며, 옷깃과 소매 끝단은 성 요한 기사단 깃발의 색인 붉은색으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검은 양각 모자와 검은 탄약통, 흰색 가죽 장구류를 착용하고 머스킷과 총검을 장비했습니다. 검은 작업복 차림에 검은 각반을 착용했고, 장교들은 허리에 천 허리띠를 두르고 부츠를 신었으며 모자에는 깃털 장식을 달았습니다.
'사냥꾼' 경보병 연대의 창설 (1777년)
1777년 새 총장 에마뉘엘 드 로앙 폴뒤스는 섬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사냥꾼'(경보병) 연대 창설을 결정했습니다. 요안니테스라 불리는 기사단처럼 작은 군대가 전문 경보병 부대를 운영한 점은 놀랍지만, 이 부대에 섬 최고의 사냥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정당화됩니다.
새 연대에 합류한 병사들 다수는 이미 다른 직책으로 기사단에 복무 중이었습니다. 이들이 과거 매를 길러 사냥을 했다는 이유로 연대는 '매사냥 연대'로도 알려졌습니다. 연대는 처음 5개, 이후 4개 중대로 이루어진 단일 대대를 운영했으며 병력은 522명이었습니다. 그러나 1798년에는 2개 대대, 총 1,200명 규모로 확대되었습니다.
몰타인이 주축이 된 부대
주목할 점은 병사는 물론 부사관과 장교까지 대부분 몰타인이었고, 몰타인이 아닌 이는 연대장뿐이라는 사실입니다. 프랑스의 침공 당시 이 연대 역시 여러 요새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으며, 휴전 협정이 서명된 이후에야 무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친프랑스 성향을 드러낸 일부 장교들은 자신들의 부하에게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사냥꾼' 연대의 제복과 장비
병사들은 흰색 견장을 단 초록색 튜닉을 입고 깃털 장식을 달린 코르시카식 모자를 썼으며, 머스킷과 총검을 장비했습니다. 가죽 장구류는 흰색, 탄약통은 검은색이었고 낮은 부츠를 신었습니다. 장교들은 계급의 표지로 검과 천 허리띠를 착용했습니다.
민병대와 함께한 기사단의 보병
해군 병력을 포함한 정규 부대 외에도 기사단의 보병 전력은 두 개의 민병대 연대로 보강되었습니다. 다만 민병대는 정규 부대가 아니어서 평시에는 중대 단위로 편성된 핵심 인원만 존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