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시몽(Jean Simon, 1912년 4월 30일 브레스트 출생 ~ 2003년 9월 28일 세르부르 별세)은 프랑스 육군의 장성으로, 사단장급 장성 계급을 가지고 육군대장(général d'armée)의 서열과 칭호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특히 1940년부터 1961년까지 프랑스 외인부대와 깊은 인연을 맺은 장군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군 경력
시몽은 프리타네 국립군사학교에서 수학한 뒤 1933년 생시르 특수군사학교에 입학했고, 1936년 소위로 졸업하여 마다가스카르 소총병 제42대대에 배속되었다.
1939년 소집된 그는 세네갈 저격병 제12연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1940년 6월 17일, 알리에 지역에 주둔 중이던 그는 피에르 메스메르 소위와 함께 라디오로 페탱 원수의 휴전 요청 담화를 듣게 된다. 같은 날 오후 포(Pau)로 전출 명령을 받은 두 사람은 자체 수단으로 새 부대에 합류할 허가를 얻어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출발했다.
자유프랑스로의 여정
패배를 거부한 두 장교는 독일군 부대를 피해 중앙고원(Massif Central)을 넘었다. 차량이 고장 나자 히치하이킹으로 타라스콘까지 이동한 뒤 보케르에서 기차를 타고 마르세유로 향했고, 1940년 6월 18일 저녁에 도착했다. 6월 20일, 장 시몬은 카포 올모(Capo Olmo)호의 선장 앙베르 뷔예맹(Humbert Vuillemin) 대위를 만났는데, 선장은 배를 영국으로 돌리는 데 도움을 줄 신뢰할 만한 인물들을 찾고 있었다.
《르 쁘티 프로방살》 신문을 통해 드골 장군의 6·18 대국민 호소를 접한 두 장교는 몇몇 동승자들과 함께 배에 올랐다. 6월 23일 밤, 호송선단에 합류해 항해하던 카포 올모호는 엔진 고장을 연출하며 서쪽으로 침로를 바꿨고, 다음 날 아침 승무원들은 선장의 결정을 통보받았다.
카포 올모호는 6월 27일 지브롤터에 도착한 뒤 7월 16일 리버풀에 입항했다. 선적 화물은 상자에 담긴 글렌 마틴 전투기 12대, 트럭, 항공 견인차 등 481톤에 달하는 각종 군수물자였으며, 이것이 영국에 매각되면서 자유 프랑스는 처음 3개월간 버틸 수 있는 재원을 확보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시몽과 메스메르는 제13외인반여단(13e DBLE)에 합류했다. 제3중대를 지휘하게 된 시몽은 에리트리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고, 시리아 전역에서는 오른쪽 눈에 부상을 입어 실명의 아픔을 겪었다. 1941년 6월 25일 대위로 진급한 그는 비르 하켐 전투와 1943년 튀니지 전역에 참전했으며, 1943년 7월에는 이탈리아 전역에 투입되어 대대장으로 승진했다.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시절
이후 그는 제1자유프랑스사단 사령부와 드골 장군의 군사참모실에서 근무했다. 1947년 3월 24일 중령으로 진급하여 인도차이나 주둔 제3외인보병연대의 지휘를 맡았고, 1949년에는 사이공의 외인부대 제9통과중대에 배속되었다.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는 육군 기술부에서 복무하고 전쟁대학에서 교육받았다. 1952년 7월 1일 대령으로 진급해 참모본부에 배속되었으며, 1956년에는 국방부 특별참모부에서 근무했다. 1957년에는 주영국 프랑스 대사관의 무관으로 재직했다.
고위 장성으로서의 행보
1960년 7월 1일 줄장으로 진급한 그는 알제 영토지역 및 군단 사령관의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961년에는 제27산악보병사단과 동부 알제 지역의 지휘를 맡았고, 1962년에는 제29보병사단과 중부 오랑 지역, 더불어 생시르 특수군사학교와 합동군사학교의 지휘관을 역임했다.
1964년 4월 1일에는 군단장 계급으로 진급하여 리옹 군정사령관과 제5군관구 사령관을 겸임했으며, 1967년부터 1969년까지 제1군단 사령관을 지냈다. 1968년에는 육군 최고평의회 위원이 되었고, 1969년에는 육군 감찰총장에 임명된 뒤 같은 해 4월 1일 육군대장 계급에 올랐다.
말년과 공직 활동
1972년에는 프랑스 적십자사 이사를 맡았고, 1973년 4월 30일 정년 퇴역을 신청했다. 이후 1973년부터 1977년까지 국방 및 국가안보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1969년 6월부터 해방훈장 평의회 회원으로 활동한 그는 1978년 9월 동료들의 추대로 해방훈장 평의회 총장(Chancelier)에 선출되어 4년 임기를 시작으로 1982년, 1986년, 1990년, 1994년, 1998년에 걸쳐 재선되었다. 또한 1978년부터 2000년까지 자유프랑스 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협회가 해산된 후에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자유프랑스 재단 회장을 맡았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샤를드골 연구소 회장도 역임했다. 그의 뒤를 이어 해방훈장 평의회 총장에는 알랭 드 부아시외가, 자유프랑스 재단 회장에는 피에르 메스메르가 선임되었다.
생시르 특수군사학교 제190기(2003~2006년)는 '시몽 장군 기'로 명명되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서훈 내역
레지옹도뇌르 대십자훈장
해방훈장 슈발리에(1941년 6월 23일 포고) 및 해방훈장 평의회 회원
군사메달(2002년 10월 16일 포고)
1939~1945 종군십자훈장(9회 표창)
해외작전전역 종군십자훈장(2회 표창)
군사용맹십자훈장(2회 표창)
레지스탕스 메달
참전용사십자훈장
자원 레지스탕스 전사 십자훈장
자유프랑스 자원복무 기념메달
식민지 메달('에리트리아', '리비아', '비르 하켐', '자유프랑스 아프리카', '극동' 클립)
북아프리카 안보 및 치안 작전 기념메달
중동 기념메달
1943~1944 이탈리아 전역 기념메달
전상 표지
아카데믹 팜 훈장 코망되르
영국 우수공로훈장(Distinguished Service Order)
영국 로열 빅토리아 훈장 코맨더
영국 군공십자훈장(Military Cross)
미국 브론즈스타 메달
브라질 군사메달
미국 훈장 '전장 명예' 배지
튀니지 니샨 이프티카르 훈장 코망되르
베냉 흑성훈장 코망되르
그는 생애 동안 모두 13회의 전공 표창을 받은 것으로 집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