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 제9군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00년째 풀리지 않는 역사의 미스터리(영상)

로마 제9군단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2000년째 풀리지 않는 역사의 미스터리(영상)

기원전 1세기에 창설되어 브리타니아에서 무용담을 쌓아온 로마 제9군단(Legio IX Hispana)은 서기 130년경을 끝으로 기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약 5천 명의 병력을 지닌 정예 군단이 어떻게, 왜 소멸했는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역사상 가장 큰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군단의 창설과 초기 활동

제9군단이 정확히 언제 창설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기원전 90년 동맹시 전쟁 당시 이미 전투에 참여한 기록이 남아 있어, 그 이전에 창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폼페이우스가 기원전 65년 스페인에서 이 군단을 창설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후 제9군단은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헬베티족(오늘날 스위스 지역) 원정에 참가했고, 폼페이우스와 벌인 내전에서도 핵심 역할을 맡았습니다. 듀라키움(오늘날 두러스) 공방전과 결정적인 파르살루스 대전투에서 싸웠으며, 아프리카 전역에서도 폼페이우스파 잔당과 격돌했습니다.

재편성, 그리고 '히스파나'라는 이름

내전이 끝나자 군단은 해산되었지만, 옥타비아누스(훗날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시칠리아의 섹스투스 폼페이우스를 상대하기 위해 재편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의 전쟁에도 참여했고, 전쟁이 마무리되자 칸타브리아족 진압을 위해 스페인으로 파견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히스파나(Hispana, 스페인의)'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그 뒤 라인강 방어선의 경비 임무를 수행했고, 이어 오늘날 헝가리·세르비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에 걸친 판노니아 속주로 이동해 주둔했습니다.

브리타니아 원정과 부디카의 반란

서기 43년, 제9군단은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브리타니아 정복 전역에 참여하기 위해 해협을 건넜습니다. 50년에는 카라타쿠스가 이끄는 브리튼 세력과 교전하는 한편, 훗날 잉글랜드 도시 링컨으로 발전하는 요새화된 진영을 구축했습니다.

52년부터 57년까지는 브리튼 반군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러나 브리튼 여왕 부디카가 일으킨 대반란 당시 군단 보병은 궤멸적인 피해를 입고 기병만 간신히 탈출하는 크나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군단은 밑바닥부터 재건에 성공했고, 71~72년에는 다시 브리튼 부족들과 싸워 오늘날 요크 자리에 새로운 요새를 세웠습니다.

몬스 그라우피우스 전투와 마지막 기록

82~83년에는 오늘날 스코틀랜드 지역의 칼레도니아족 원정에 참여해 유명한 몬스 그라우피우스(Mons Graupius) 전투에 출전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로마군은 칼레도니아족을 사실상 궤멸시켰습니다.

제9군단이 브리타니아에 존재했다는 마지막 증거는 서기 108년 것으로, 요크에서 발견된 비문입니다.

군단의 종언, 그리고 실종

일부 단서에 따르면 군단 또는 그 일부 병력은 오늘날 네덜란드와 독일 아헨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 학자들은 군단이 130년까지 그곳에 주둔했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학자들은 군단 명칭이 '제6 히스파나(VI Hispana)'로 변경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주장들을 뒷받침할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군단은 기록 속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춥니다. 실종 시점은 대체로 서기 130년에서 197년 사이로 추정됩니다.

1. 브리타니아에서 궤멸했다는 설

가장 대표적인 가설은 군단이 브리타니아 현지 세력과의 전투에서 궤멸했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거장 역사학자 테오도어 몸젠(Theodor Mommsen)은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군단이 요크에서 소멸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에 활동한 수사학자 프론토(Fronto)의 언급을 근거로 들었지만, 이를 입증할 고고학적 발견이나 문서 기록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참사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당대 어떤 역사가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습니다.

2. 유대아 반란에서 소멸했다는 설

또 다른 가설은 군단이 서기 132년 유대아의 대반란 진압 과정에서 궤멸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로마의 공식 기록에도, 고대 역사가들의 저술에도 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3.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소멸했다는 설

세 번째 가설은 동방에서 파르티아와의 전쟁 중 궤멸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가설의 확장판에서는 군단이 파르티아에게 포로로 잡혀 병사들이 파르티아 제국의 동부 국경에서 싸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로마 병사들이 멀리 중국까지 도달했다는 이야기까지 등장합니다. 물론 이 역시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소설과 영화로 이어진 미스터리

제9군단의 실종은 역사학자들을 넘어 작가와 영화 제작자들에게까지 영감을 불어넣었습니다. 실종된 군단의 운명을 추적하는 내용의 소설 『독수리(The Eagle)』는 2011년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아래 영상은 바로 이 미스터리를 다룬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