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13세 소년이 아버지를 밀고하다…소련 선전의 전성기와 그 이면의 진실

13세 소년이 아버지를 밀고하다…소련 선전의 전성기와 그 이면의 진실

복종의 대상은 오직 당뿐이었다

소련에서 유일하게 복종해야 할 존재는 당뿐이었다. 13세 소년 파블리크 모로조프는 이 원칙을 누구보다 철저히 학습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를 영웅으로 만든 소련 공식 역사학에 따르면, 모로조프는 어린이 공산주의 단체인 '파이오니어(Pioneers)'의 일원이었다고 전해진다.

스탈린 역사서가 그리는 '모범 소년'

스탈린 시대의 공식 기록에 따르면, 우랄 지방 게라시모프카 마을에서 태어난 어린 모로조프는 불과 13세에 이미 확고한 공산주의자였으며, 학교 '파이오니어' 조직의 지도자였고,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이른바 '호모 소비에티쿠스', 즉 소련식 인간의 완벽한 모범상, 태어날 때부터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을 적대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1932년, 친아버지를 고발하다

1932년 모로조프는 아버지가 "소련의 적들에게 문서를 넘겼다"며 망설임 없이 지역 GPU(국가정치총국)에 밀고했다. 아버지는 체포되어 굴라그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결국 처형되고 말았다.

영웅의 비극적 최후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 조부모, 사촌 등 가족들이 이 공산주의 '영웅'을 살해했다. GPU는 삼촌을 제외한 이들을 모두 검거해 처형했다. 이 이야기는 소련 전역에 대대적으로 퍼뜨려졌고, 가족보다 당과 스탈린이 더 우위에 있다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데 활용되었다. 모로조프는 '반동 세력'에 맞선 공산주의 이념의 순교자로 추앙받게 되었다.

전설이 된 한 명의 소년

여러 도시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수많은 학교와 청소년 단체가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오페라와 노래가 그를 기려 만들어졌으며, 그의 생가는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아이들은 '영웅 파블리크'처럼 부모의 '반소비에트적' 행위를 신고하도록 끊임없이 독려받았다.

정권이 묻어버린 진실

물론 모로조프의 이야기에는 진실의 조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은 소련 정권에 득이 되지 않는 진실이었기에 최대한 감춰졌다. 실제로 어린 모로조프는 아버지를 밀고했을 당시 '파이오니어' 회원이 아니었다. 그저 가입하고 싶어 했을 뿐이다.

또한 그의 가엾은 아버지는 소련의 적에게 어떤 문서도 판 적이 없다. 그의 '죄'란 스탈린의 '현명한' 집단화 정책으로 굶주림에 내몰린 가족을 먹이기 위해 밀 몇 자루를 숨겨두었던 것뿐이었다.

소련 해체 후 드러난 새로운 증거들

'사회주의 조국'이 해체된 뒤 더 많은 자료가 세상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어린 모로조프는 GPU 요원에게 살해되었거나, 좀 더 개연성 있는 설로는 또래들과의 단순한 다툼 속에서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어머니가 남편을 겨눈 다툼에서 아이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장 유력한 설은 이 이야기 자체가 GPU가 꾸며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게라시모프카 마을은 '집단화에 반항한 반동 쿨라크(부농)들의 소굴'로 낙인찍혀 있었고, GPU는 이를 본보기로 만들 마땅한 선전 소재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

13세 소년이 아버지를 밀고하다…소련 선전의 전성기와 그 이면의 진실

▲ 유일하게 현존하는 파블리크 모로조프의 실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