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끝나지 않은 전쟁, 소모전의 시대
1970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전쟁 중'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 이후 적대 행위는 결코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모전(War of Attrition)이라 불린 이 국면은 수년간 육·해·공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연이은 패배로 시나이 반도를 상실한 이집트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그들을 강압적으로 '설득'하려 했습니다.
'로도스' 작전의 배경
'로도스' 작전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추진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바로 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 샤드완(Sandwan) 섬에 대한 공격을 결심합니다. 이집트군은 이곳에 레이더 기지를 설치해 두었는데, 작전 목표는 이 기지의 파괴와 함께 이집트 포로 확보였습니다. 포로는 정보 수집은 물론 이스라엘 포로와의 교환 카드로 활용될 예정이었습니다.
섬 점령 임무는 제202 낙하산 대대와 낙하산 여단 소속 정예 정찰 중대가 맡았으며, 정찰 중대는 모티 파즈(Moti Paz) 대위의 지휘 아래 있었습니다.
섬에 주둔한 이집트 수비대의 규모는 크지 않았습니다. 이집트 특수부대원 60명과 해군 병력 40명이 방어를 담당했으며, 핵심 거점은 등대와 그 주변 건물, 그리고 9개의 외곽 초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기습 개시
1970년 1월 22일 아침, 이스라엘 A-4 스카이호크 12기가 섬의 이집트 진지를 폭격하며 작전이 시작되었고, 공습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이 공습으로 이집트 수비대 지휘관이 사망하면서 수비대가 지휘체계 자체를 잃어버렸다는 점이었습니다.
곧이어 이스라엘 낙하산 부대원들이 벨 205와 SA-321K 슈퍼 프렐롱 헬리콥터를 타고 출동했습니다. 오전 9시 15분, 이스라엘군이 섬에 상륙했습니다. 제202대대 병력은 즉각 이집트 진지에 대한 공격에 나섰고, 이집트군은 무장 해제 권고를 거부하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만에 세 개의 초소만이 저항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은 단 1명의 전사자만을 냈습니다. 그러나 파즈 대위의 부대가 서쪽에서 이집트 진지를 우회 공격하려던 중 지뢰밭에 빠져드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바트 레프(Bat Lew) 중위가 전사하고 정예 중대의 여러 병사가 부상을 입었으며, 이 중대는 결국 철수해야 했습니다. 오전 10시 30분, 야론(Yaron) 대령 휘하의 증원군이 섬에 도착했습니다. 정오 12시, 이스라엘군의 새로운 공격으로 등대는 점령에 성공했지만 주변 건물은 아직 손에 넣지 못했습니다. 돌격조 지휘관 코틀러(Kotler) 중위 또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마침내 오후 12시 57분, 이스라엘군이 수류탄으로 모든 건물을 소거하면서 저항은 완전히 멎었습니다. 부상당한 코틀러 중위와 중상을 입은 이집트 장교가 시나이로 후송되었지만, 홀로 끝까지 싸웠던 그 용감한 이집트 장교는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계속 저항하던 이집트 거점 '다프나(Dafna)'와 '느보라(Nvora)'는 공군의 지원 하에 각각 오후 2시 15분과 3시 30분에 함락되었습니다. 수비군 가운데 17명이 전사하고 14명이 포로로 잡혔으며, 섬의 다른 지역에서도 추가로 포획된 병력이 있었습니다. 전투는 여기서 종결되었습니다.
이집트군은 성급하게 반격에 나섰지만 실패했습니다. 먼저 어뢰정 2척을 섬으로 파견했으나 이스라엘 A-4기에게 발각되어 격침되었고, 이어 소련제 Il-28 폭격기 1기가 단독으로 섬을 폭격했지만 이스라엘군에게는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습니다.
야간 대기와 철수
이스라엘군은 밤새 섬에 머물렀지만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오전 11시 50분, 등대를 제외한 모든 시설을 파괴한 뒤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고, 마지막 헬리콥터는 1월 23일 오후 2시 40분에 섬을 떠났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이집트 포로 62명과 데카(Decca) 레이더의 일부 부품, 그리고 탄약을 전리품으로 가져갔습니다.
이번 작전으로 이스라엘군은 전사 3명, 부상 7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스라엘 측 발표에 따르면 격침된 어뢰정 승무원을 포함해 이집트군 사망자는 70명에 달했으며, 이집트 역시 총 80명의 피해를 인정했습니다.
카이로 당국은 이스라엘이 섬 상륙에 '실패했다'며 병력 30명과 항공기 2기를 잃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 발표에도 불구하고 나세르 대통령은 진실을 알고 있었고, 작전이 끝나자마자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