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일개 병사에서 원수까지, '총검 장군' 수보로프와 그의 군사 교리

일개 병사에서 원수까지,  총검 장군  수보로프와 그의 군사 교리

알렉산드르 바실리예비치 수보로프는 군사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존재다. 러시아인이었지만 그의 핏줄에는 스웨덴과 아르메니아의 피가 흘렀다. 귀족 출신임에도 일개 병사로 군생활을 시작했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오직 공적으로만 러시아 최고의 군직에까지 올랐다.

병사 출신 귀족 장군

아버지 가문은 스웨덴계였다. 선조들은 1622년경 러시아 노브고로드에 정착했으며, 어머니는 아르메니아계였다. 알렉산드르 수보로프는 1730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고위 장교였다.

그러나 어린 알렉산드르는 몸이 약한 소년이라 군인이라는 직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대신 그는 배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수학과 천문학, 그리고 무엇보다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으며 외국어와 펜싱, 사격까지 익혔다.

12세의 근위병

12세에 차르 근위 세묘놉스키 연대에 사병으로 입대했고, 얼마 후 장교 학교에 들어갔다. 1748년 상등병으로, 1750년에는 하사관으로 진급했다. 1754년에는 수업을 마치고 잉게르만란트 보병연대 중위로 임명되었다.

칠년전쟁(1756~1763)이 발발하자 승진을 거듭해 1758년 중령이 되었고 메멜 요새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1759년에는 프로이센 영토로 진격한 페르모르 원수의 군대에 배속되어 팔치히 전투와 쿠네르스도르프 전투에 참전했다. 이후 잠시 병참 업무를 맡았으나 1760년 현역으로 복귀해 페르모르의 참모부에서 근무했으며, 베를린 점령에도 참여했다. 1761년에는 트베리 용기병연대 지휘권을 맡아 포메라니아에서 탁월한 전공을 세웠고 부상까지 입었다. 1762년에는 아스트라한 보병연대 지휘관이 되었다.

터키와 폴란드를 상대로 한 연승

1768년 폴란드와의 전쟁에 참전하여 크라쿠프를 점령했고, 이후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어 1774년까지 오스만 제국(터키)과 싸웠다. 또한 푸가초프 반란 진압에 참여했으며, 1774년부터 1783년까지 러시아가 정복한 크림반도와 코카서스에서 복무했다.

1786년 대장으로 승진했다. 바로 다음 해인 1787년부터 1792년까지 다시 터키와 싸워 러시아의 동맹국 오스트리아군과 함께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포크샤니 전투, 림니크 전투, 이즈마일 함락).

1787년 킨번 전투에서 중상을 입었고, 터키군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감싸 준 척탄병 스테판 니키토프의 영웅적인 행동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1794년에는 또 한 번의 폴란드 봉기를 진압해 11월 4일 바르샤바를 함락했는데, 이 과정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수천 명의 폴란드 민간인을 학살했다. 그럼에도 수보로프는 원수로 승진했다.

이탈리아 원정과 비극적인 최후

예카체리나 2세가 사망하자 새 황제 파벨 1세는 수보로프를 예편시켰다. 그러나 1799년 그는 다시 현역으로 소집되어 프랑스군과 싸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파견되었다. 한니ibal처럼 알프스를 넘어 카사노, 트레비아, 노비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1800년 러시아로 돌아왔을 때 황제는 그를 냉대했다. 고난을 함께해 온 늙은 베테랑 수보로프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며칠 뒤인 1800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났다.

남긴 군사적 유산과 교리

수보로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구스타부스 아돌푸스, 스웨덴의 카를 12세를 롤모델로 삼았다. 그는 군사 역사를 폭넓게 연구했고, 여기서 얻은 교훈을 자신의 전투에 그대로 적용했다. 공격 전술을 중시했으며, “탄환은 미친 놈이요, 총검만이 훌륭한 아이다”, “나는 방어하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겠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철저한 훈련을 신봉했던 그는 스스로 만든 좌우명을 늘 실천에 옮겼다. “훈련은 어렵게, 전투는 쉽게”, “숫자가 아니라 기량으로 싸워라.” 수보로프는 이상적인 지휘관이었다. 그가 스스로 인정했듯 그는 원수였고 병참 책임자였으며, “하사관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맡았다. 병사들은 그를 문자 그대로 우상처럼 따랐고 기꺼이 그를 따라 전장으로 나섰다.

선형 전술이 지배하던 시대에 살았지만 그 자신이 혁신가였으며, 돌격 팔랑크스에 버금가는 밀집된 종심대형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특히 터키군을 상대할 때 그러했다. 종심대형의 장점은 선형대형처럼 결속력을 잃지 않으면서 더 빠르게 기동할 수 있다는 점, 적을 향한 강력한 공격 추진력으로 작동한다는 점, 그리고 적 기병의 공격에도 취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일개 병사에서 원수까지,  총검 장군  수보로프와 그의 군사 교리

알프스 산맥에서 병사들과 함께한 수보로프(말을 탄 왼쪽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