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곤륜관 전투: 400대의 전차가 움직인 중일 기계화 대전

곤륜관 전투: 400대의 전차가 움직인 중일 기계화 대전

곤륜관(崑崙關) 전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중일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중국군이 약 400대의 전차를 한꺼번에 투입한 전투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전략적 요충지, 곤륜관

곤륜관은 현재의 중국-베트남 국경 인근 광시(廣西)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장악하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일본군의 목표는 당시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거치는 중국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먼저 나서 곤륜관을 점령해 두었다. 중국군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고개를 되찾아야만 했다.

양측의 병력 규모

일본군은 육·해·공군 병력을 총동원했다. 선봉은 다른 부대로 증강된 정예 제5사단이었다. 일본군은 총 4만 5천 명을 전장에 투입했으며, 항공모함 2척과 다수의 군함이 이들을 지원했다.

중국군 측에서는 증강된 제5집단군 6만 명이 참전했고, 소련제 경전차 270대(T-26 240대, BT-5 30대)와 이탈리아제 CV-33 탱켓트 120대도 함께 투입되었다. 두위밍(杜聿明) 장군이 지휘한 제5집단군은 제200사단, 신22사단, 그리고 제1 '영예' 사단을 예하에 두고 있었다.

중국군의 공세 개시

중국군은 제200사단과 제1 '영예' 사단 등 두 개 사단을 제1선에 배치해 공격을 시작했으며, 신22사단은 일본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기 위한 기동 작전을 수행했다. 일본군은 완전히 기습당한 형국이었다. 제5사단 사령관 나카무라(中村) 중장은 신22사단에게 포위될 위기에 몰리자 돌파를 시도하던 중 전사했다.

일본군의 반격과 후퇴

항공 지원을 받은 일본군은 '불굴의 검'이라 불리던 정예 제21보병여단을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포위망에 갇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군 역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는데, 특히 최전선 부대의 장교 손실률은 무려 85%에 달했으며, 이 과정에서 중국군 전차부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전투의 결과와 의의

일본군의 총 사상자는 최소 8천 명에 달했다. 중국군의 피해는 적의 공습 때문에 더욱 컸는데, 전사 및 실종 6천400명, 부상 1만 1천 명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는 1938년 이후 처음으로 거둔 의미 있는 승리였으며, 중국군과 국민의 사기를 크게 진작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곤륜관 전투: 400대의 전차가 움직인 중일 기계화 대전

중국군 병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