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에서 독일 U-보트 U-559을 포획한 영국 구축함 HMS 페타드(Petard)의 이야기는 정보전의 흐름을 바꾼 극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어 있다. 페타드는 잠수함 탐지 신뢰성과 기동 정밀함으로 소함대 내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이는 북대서양 대잠수함전 베테랑인 손턴(Thornton) 함장의 철저한 훈련 덕분이었으나, 승조원들에게는 끊임없는 훈련과 사소한 실수에도 가혹한 처벌이 따르는 원성이 높은 함장이기도 했다.
끝나지 않던 추적전
정규 대잠수함 작전 절차에 따라 세 척의 구축함이 삼각형을 이루며 소나로 잠수함을 탐지하면, 네 번째 함정이 폭뢰를 투하하는 방식이었다. 기함 HMS 페이켄햄(Pakenham)부터 투하가 시작됐으나, U-559의 함장은 노련한 베테랑이었다. 그는 직진하다 폭뢰가 수면에 닿는 소리가 들리면 90도 선회해 폭발 지점에서 멀어졌다. 폭발로 생긴 기포가 소나를 몇 분간 마비시켰기에, 매번 처음부터 다시 탐지해야 했다. 이 과정이 하루 종일 반복되며 승조원들의 피로는 극에 달했다. 교범대로라면 잠수함의 배터리가 방전되어야 했으나, 밤이 되어도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폭뢰를 소진한 두 척은 보급을 위해 항구로 복귀했다.
비누로 폭뢰 신관을 조작하다
페타드는 여전히 폭뢰를 보유한 채 세 번째 투하 순서를 맞았다. 밤 11시경, 소나 장병 지휘관 에릭 셀러스(Eric Sellars)가 함장에게 "잠수함을 놓쳤다"고 보고했다가, 곧 "매우 약하고 퍼진 신호"를 잡았다고 정정했다. 잠수함은 함정의 최대 항해 깊이라고 알려진 폭뢰 최대 폭발 깊이보다 더 깊은 해저에 앉아 있었다.
함교에서 열린 장교 회의에서 셀러스는 "잠수함이 배터리 소진으로 기동 불능 상태라 해저에 착저한 것"이라 판단했다. 소나 전공자인 그는 해군 학교에서 배운 비상 대처법을 떠올렸다. 폭뢰 신관은 내부의 작은 용기에 구멍을 통해 물이 차오르며 작동하는데, 구멍 크기로 폭발 깊이를 조절한다. 잠수함이 바닥에 있다면 구멍을 일반 비누로 막아 폭발을 지연시키면, 폭뢰가 바닥에 닿은 뒤 터지므로 명중률엔 지장이 없다는 원리였다.
여덟 발의 폭뢰가 동시에 투하되었고, 동시 폭발의 위력은 페타드마저 파괴할 만큼 거셌다. 물살이 가라앉고 소나가 다시 투명해지자, 셀러스의 예민한 청각은 잠수함이 부상 중임을 포착했다. 잠시 후 탐조등에 회색빛 함교와 작은 흰 말 문양이 비쳤다. 독일 승조원들이 탈출하려 하자, 페타드는 대공포로 이들을 향해 발포했다. 6명이 즉사하고 여러 명이 부상당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손턴 함장은 사격을 중지했고, 곧 바다엔 구조를 기다리는 독일 병사들로 가득 찼다.
U-559 포획의 숨은 영웅들
두 척의 보트가 투하됐고, 그중 하나는 28세의 토니 패슨(Tony Fasson) 중위가 지휘했다. 어둠과 혼란 속에 16세 조리병 토미 브라운(Tommy Brown)이 몰래 보트에 올라탔다. 영국 수병들은 물에 빠진 독일인들을 다치지 않게 구조하려 애썼으나, 난간에 매달린 이들은 냉정히 뿌리쳤다. 잠수함 승선 비밀 훈련을 받았던 패슨 중위는 기다림이 영원같이 느껴졌다. 같은 보트에 탄 콜린 그레이지어(Colin Grazier) 수병이 수영에 능숙함을 알자, 패슨은 그와 함께 바다로 뛰어들어 함교로 헤엄쳐 갔다. 브라운은 보트 선수에서 그들을 지켜보다 보트가 함체에 붙자 갑판으로 뛰어올라 함교 사다리로 내려갔다.
밧줄을 더 달라고 요청하며 브라운은 청년기의 무모함으로 사다리를 타고 두 층 아래 통제실로 내려갔다. 물이 무릎까지 차오르고 천장에서 물줄기가 쏟아지는 음산한 공간에서, 플레어 불빛 아래 패슨 중위와 그레이지어 수병은 유령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패슨은 함장실에서 서랍을 소총 개머리판으로 부수며 뒤졌고, 문 뒤에서 열쇠를 찾아 캐비닛을 열었다. 거기서 책 더미를 꺼내 방수 자루에 담아 브라운에게 건넸다. 브라운은 자루를 받아 사다리를 올랐고, 중간에서 라크루아(Lacroix) 수병에게 넘겼다. 패슨과 그레이지어는 테이블에 케이블로 연결된 상자를 뜯어내려 애썼고, 브라운은 물이 아까보다 더 차오름을 느꼈다.
패슨이 사다리 구멍으로 밧줄을 내려 더 큰 상자(유리창이 달린, 아마도 에니그마 암호기)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라크루아와 다른 수병이 끌어올렸다. 브라운은 두 번째 문서 자루를 가지고 올라오려다 "함정 포기!"라는 외침을 들었다. 해치를 내다보니 패슨이나 그레이지어인 줄 알았던 이(아마 라크루아)가 명령을 외치는 순간, 브라운은 소용돌이 치는 물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반쯤 익사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잡힌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보트는 페타드로 귀환했고, 브라운은 수병에게 두피를 잡힌 채, 라크루아는 난간 너머로 물을 토해내며, 부상당한 독일 병사들은 자루들을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탑승했다. 꽤 오랫동안 수색했으나 패슨과 그레이지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손턴 함장은 정식 갑판 점호를 실시하고 일지에 두 사람의 실종을 기록했다. 패슨 중위와 그레이지어 수병은 잠수함과 함께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블레츨리 파크로 간 암호책
페타드는 새벽에 하이파 항에 입항했다. 포로들은 하선해 헌병대에 인계됐고, 승선 사실이 독일에 알려지지 않도록 격리 및 서신 검열 조치가 취해졌다. 선원들이 이른 아침부터 술을 찾아 나선 사이, 표식 없는 차량에서 SIS(비밀정보부) 요원 두 명이 내렸다. 그들은 함정에 올라 셀러스와 손턴을 만나 자루들을 인수받으며 비밀 유지를 약속했다. 몇 주 후, 그 자루들은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에 도착했다. 거기엔 단신호약도(Short Signal Book)와 기상단신호약도(Weather Short Signal Book)가 들어 있었는데, 이는 해군 에니그마(Naval Enigma) 암호 해독에 쓰일 '크립(Crib, 추정 평문)'의 핵심 자료였다.
늦게야 밝혀진 진실
패슨 중위와 그레이지어 수병은 수십 년간 '무명의 영웅'으로 남았다. 할리우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