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일 전쟁 이후, 계속된 긴장
이스라엘이 1967년 6일 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집트는 협상 테이블에 앉기를 거부하며 적대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집트군은 소련의 대규모 군사 지원을 바탕으로 빠르게 재건되고 강화되어 갔다.
1969년 3월 8일, 이집트는 이후 '소모전(War of Attrition)'이라 불리는 전쟁을 이스라엘에 선포했다. 수에즈 운하 양안에서 벌어진 포격전은 수개월간 지속되며 양측 모두에게 큰 피해를 안겼다.
복서 작전의 배경
이에 맞서 이스라엘은 수에즈 운하 서안에 상륙해 이집트군을 섬멸하는 '복서 작전(Operation Boxer)'을 계획했다. 그러나 작전에 앞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그린 섬(Green Island)에 설치된 이집트군의 조기경보 레이더였다. 이 레이더가 살아 있는 한 이스라엘군의 움직임은 모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은 7월 19일 '불무스 6(Bulmus 6)' 작전을 통해 그린 섬의 레이더 기지를 성공적으로 무력화했다. 이로써 복서 작전의 길이 열렸다.
복서 작전 개시: 3시간 만에 171소티, 폭탄 200톤
다음 날인 7월 20일, 이스라엘군은 수에즈 지역 공격을 개시했다. 첫 번째 표적은 이집트가 배치한 소련제 지대공 미사일(SAM) 진지였다.
오후 2시, 이스라엘 공군의 미라주(Mirage) 전투기 2대가 포트사이드 서쪽의 SA-2 미사일 진지 레이더를 정확히 파괴했다. 이어 제109비행대대 소속 A-4 스카이호크(Skyhawk) 공격기들이 미사일 발사대를 연달아 파괴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가용한 모든 항공기를 동원해 해당 지역에 대규모 공습을 퍼부었다. 불과 3시간 만에 171소티가 출격해 폭탄과 로켓탄 200톤을 투하했다. 기습에 완전히 당한 이집트 공군은 감히 요격에 나서지 못했다.
이집트 공군의 반격 시도
그러나 이집트 공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항공기 60대를 동원해 시나이 방면으로 양동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즉각 미라주 전투기 6대를 발진시켜 맞섰다.
이어진 격렬한 공중전 끝에 이집트 항공기 3대와 이스라엘 항공기 2대가 격추되었다. 이집트는 여기에 더해 대공포화에 의해서도 항공기 2대를 추가로 잃었다.
제2·3단계: 연이은 강타
작전은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이스라엘 A-4 공격기 4대가 이집트의 대공포망을 무력화하며 7월 24일 시작된 제2단계('복서 2')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라주 2대가 게벨 아타카(Gebel Ataka)의 이집트 레이더 기지를 또다시 파괴했고, 이어진 161소티의 공습으로 이집트 진지는 크게 파괴되었다.
이집트 공군은 다시 한번 양동 공격을 시도했지만 뚜렷한 성과 없이 항공기 6대를 잃었다. 3대는 미라주 전투기에게, 나머지 3대는 대공포화에 의해 격추된 것이다.
7월 25일에는 제3단계('복서 3')가 시작되었고, 7월 28일까지 제4단계부터 제6단계('복서 4~6')가 이어지며 이스라엘은 이집트를 집요하게 두들겼다.
작전의 결과
복서 작전 전체 기간 동안 이집트는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항공기 9대와 막대한 군사 물자를 상실했다.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공중 우세가 고스란히 드러난 작전이었다.
흥미롭게도 이 작전의 원래 목표였던 수에즈 운하 도하 및 상륙 작전 자체는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럼에도 복서 작전은 이스라엘 공군의 정밀 타격 능력을 입증한 사례로 평가받으며, 소모전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