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세계대전, 페낭은 전장이 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말레이시아 페낭이 교전국 간의 전쟁터가 될 것이라고 상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독일 해군은 중국에 분견함대를 두고 있었는데, 전쟁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함선은 칠레 연안으로 항해했다. 단 한 척, 경순양함 SMS 엠덴(SMS Emden)만이 남겨졌다.
평범한 함선, 특별한 함장
엠덴은 드레스덴급 경순양함으로, 만재 배수량 4,268톤, 길이 118m, 승무원 361명을 보유했으며 105mm 포 10문과 18인치 어뢰 발사관 2문으로 무장했다. 최대 속력은 23.5노트였고 장갑은 얇은 편이었다.
요컨대 엠덴은 특별한 함선이 아니었다. 그러나 카를 폰 뮐러(Karl von Müller) 함장의 뛰어난 지휘 덕분에 오히려 성능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약 2개월 동안 인도양을 누비며 연합국 선박 20척 이상을 나포하거나 격침시켰고, 승무원은 거의 잃지 않았다. 뮐러는 '깨끗한' 전쟁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당시 영국령 인도 마드라스의 연료 저장소를 폭격한 후, 엠덴은 말레이 연안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편 협상국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다수의 함선을 이 해역에 파견하며 엠덴 격침 작전에 착수하고 있었다.
페낭 입항
뮐러는 추격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추가적인 타격까지 노리고자, 당시 영국이 통치하던 말레이시아 페낭 항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자신의 배의 정체를 감추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가짜 굴뚝을 만들도록 명령했고, 네 개의 굴뚝을 갖춘 엠덴은 영국 타운급 순양함처럼 보이도록 위장되었다.
1914년 10월 28일 새벽 4시 30분경, 엠덴은 아무런 저항 없이 항구에 진입했다. 항구에는 세 척의 협상국 군함이 정박해 있었다. 러시아 방호순양함 젬추그(Zhemchug), 프랑스 순양함 디베르빌(D'Iberville), 그리고 역시 프랑스 소속의 구축함 프롱드(Fronde)였다. 그 밖에 영국 해군의 상선과 석탄 운반선 몇 척도 머물고 있었다.
방심한 러시아 함장
러시아 순양함은 이들 중 가장 강력한 함선이었다.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체르카소프(Ivan Alexandrovich Cherkasov) 남작이 지휘하는 이 배는 정비를 위해 이틀 전 입항해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함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러시아 함장은 승무원 여럿에게 상륙을 허가한 뒤, 자신도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호텔로 떠나버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탄약고가 잠긴 채 방치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120mm 포마다 즉시 사용할 수 있는 탄약은 단 12발뿐이었고, 함의 어뢰마저 사용 불능 상태였다. 러시아 함은 120mm 포 8문, 18인치 어뢰 발사관 4문, 47mm 경포 4문으로 무장했다. 장갑은 엠덴보다 얇았지만 속력은 더 빨랐다.
새벽의 기습
엠덴은 독일기를 게양한 채 서서히 항구로 진입하며 포문을 열었다. 러시아 함에 근접하자 근거리에서 어뢰를 발사했다. 배에 남아 있던 소수의 러시아 수병들이 반격을 시도했지만 포탄은 목표를 벗어나 아군 함선을 맞췄고, 사용할 수 있는 탄약도 턱없이 부족했다.
엠덴은 항구 출구 쪽으로 방향을 틀며 러시아 순양함에 또 다른 어뢰를 발사했다. 젬추그는 둘로 잘려 침몰했고, 89명의 승무원이 함께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부상자는 143명에 달했다. 한편 프랑스 군함들은 상황을 파악하고 독일 함에 포격을 개시했지만 명중률은 낮았다.
그러나 항구를 빠져나오던 엠덴은 순찰에서 돌아오던 프랑스 구축함 무스케(Mousquet)와 마주쳤다. 프랑스군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엠덴의 포격은 작은 배를 산산조각 내어 침몰시켰다. 독일군은 프랑스 선원 36명을 구조한 뒤 혼란과 파괴를 남기고 떠났다. 부상당한 프랑스인 3명은 귀항 도중 사망했다.
가벼웠던 처벌
'발랄한' 러시아 함장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고작 42개월형을 선고받았고, 그의 상관은 18개월형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강등된 뒤 해군에서 축출되었다. 그러나 차르 니콜라이 2세는 그들의 형을 감경하고 해군에 복직시켰다.

독일 경순양함 엠덴.

러시아 순양함 젬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