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적 실화: 포로를 잡아먹은 일본군, 지치지마 섬의 참극 (잔혹한 내용 주의)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적 실화: 포로를 잡아먹은 일본군, 지치지마 섬의 참극 (잔혹한 내용 주의)

"전쟁과 사랑에는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속담이 있다. 하지만 잔혹함의 한계마저 뛰어넘는 행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 가장 병적인 상상력의 경계를 넘어선 행위가 바로 1944년 말, 오가사와라 제도(보닌 제도)의 지치지마 섬에서 벌어졌다.

훗날 대통령이 되는 조지 부시를 구원한 잠수함

이 작은 섬은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000km 떨어진 태평양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당시 오가사와라 제도 일대의 일본군 수비대를 지휘하던 인물은 다치바나 요시오(立花芳夫) 중장이었다.

1944년 9월, 미국 잠수함 '핀백(USS Finback)'호가 파도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던 한 미군 조종사를 발견했다. 잠수함은 즉시 구조 작전에 나섰고, 그 조종사를 무사히 구출했다. 그가 바로 훗날 미국 대통령이 되는 조지 부시였다.

살아남은 것은 단 세 명

그는 오가사와라 제도 상공에서 격추된 약 100명의 미군 비행사 중 한 명이었다. 부시는 지치지마 섬을 공습했던 편대에서 살아남은 단 세 명의 비행사 중 하나였다.

나머지 여덟 명의 미군 비행사는 그렇게 운이 좋지 않았다. 다치바나의 명령에 따라 이들은 참수형에 처해졌다.

포로의 간을 요리한 축연

다음 날, 일본군 장교들은 축연을 계획했다. 그 자리에서 일본군은 "투지를 과시한다"는 명분 아래 처형된 미군 한 명의 간을 먹기로 결정했다. 시신은 매장지에서 다시 파내졌고, 군의관 데라키가 흉곽을 열어 간을 적출했다.

일본군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사케를 마시며 간뿐만 아니라 살점까지 함께 먹었다고 한다.

희생자는 비행사 플로이드 홀이었으며, 그의 살은 간장과 채소를 넣어 요리되었다. 증언에 따르면 일본군은 이후 미군 비행사 세 명을 더 잡아먹었다. 나머지 네 명은 구타 끝에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전쟁 중 일본군의 식인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게 식인 행위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보급이 끊긴 고립 부대의 병력들은 경우에 따라 포로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식인은 때때로 병사들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장교의 명령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더욱 끔찍한 사례도 있었다. 일본군이 포로를 가축처럼 '사육'하면서, '고기를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그날 요리할 부위만 잘라내고 포로를 조금씩 해체하며 먹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전범 재판과 최후

1947년, 이 끔찍한 만찬에 연루된 공범들은 전범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다섯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고, 다치바나 중장은 교수형에 처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의 충격적 실화: 포로를 잡아먹은 일본군, 지치지마 섬의 참극 (잔혹한 내용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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