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베일에 싸인 항공 미스터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항공기 실종 사건들

베일에 싸인 항공 미스터리… 흔적도 없이 사라진 항공기 실종 사건들

플라이트 19, 버뮤다 삼각지대 전설의 시작

1945년 12월 5일 오후, 미 해군 TBM 어벤저 뇌격기 5대가 승무원 총 14명을 태우고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해군기지를 이륙했습니다. 날씨는 훈련 비행에 최적의 조건이었고, 계획된 임무는 약 2시간의 일상적인 순항이었습니다.

편대장은 제2차 세계대전 전선 참전 경험과 누계 2,500시간의 비행 기록을 갖춘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 소위였습니다. '플라이트 19'라는 공식 명칭이 붙은 이 임무는 훗날 '버뮤다 삼각지대'(마이애미–푸에르토리코–바하마)로 알려지게 되는 해역을 따라 순찰 및 폭격 훈련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던 중, 오후 3시 45분경 유사한 임무를 수행 중이던 다른 편대의 로버트 콕스(Robert Cox) 소위가 무전 주파수에서 플라이트 19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테일러 소위는 자신의 나침반이 두 개 모두 고장 나 방향 감각을 잃었다고 알렸고, "공항을 찾으려 하는데 찾을 수 없다"는 말이 무전으로 포착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후 6시 20분, 콕스 소위가 마지막으로 들은 테일러의 목소리는 이렇습니다. "연료가 바닥났다. 우리는 지금 추락하고 있다."

미 해군은 즉시 역사상 손꼽히는 대규모 수색·구조 작전을 개시했고, 이 작전은 12월 10일까지 이어졌습니다. 해군 항공기 300대 이상과 함선 21척이 동원되어 무려 25만 평방마일에 달하는 해역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5대의 비행기는 지구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플라이트 19를 수색하러 출발한 PBM-5 마틴 마리너 수상기(승무원 13명)마저 이륙 몇 분 뒤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해군 조사부가 작성한 공식 500페이지 분량의 결론 보고서는 책임을 편대장 테일러 소위에게 돌렸습니다. 그가 방향 감각을 상실하면서 편대 전체가 연료 부족으로 대서양에 추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이상학적 시나리오를 포함한 여러 다른 가설들도 존재했으며, 이러한 이론들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습니다.

이 사건은 항공 역사상 가장 신비로운 실종 사건으로 기록되었고, 이후 1962년 4월부터 비행기들이 사라진 그 해역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버뮤다 삼각지대' 전설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지중해에서 잃어버린 핵폭탄

1956년 3월 10일, 핵폭탄 2기를 실은 미 공군 B-47 스트래토젯(Stratojet) 폭격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당일 네 대의 항공기가 플로리다 맥딜(MacDill) 공군기지를 이륙해 모로코 벤게리르(Ben-Gerir) 공군기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편대는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고 공중 급유도 무사히 마쳤습니다. 두 번째 급유는 지중해 상공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당시 기상 조건은 짙은 구름이 겹치며 비행에 상당히 까다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정상적인 시야가 회복되었을 때, 승무원 3명을 태운 한 대의 항공기가 사라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항공기의 마지막 좌표를 바탕으로 수색·구조팀이 즉시 파견되었고, 현지에는 프랑스와 모로코 병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영국 왕립해군 함정들도 해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늘에 번뜩인 섬광

1962년 3월 16일 밤, 미 공군 록히드 L-1049 슈퍼 컨스텔레이션(Super Constellation)이 실종되었습니다. 이 항공기는 군인 96명을 캘리포니아에서 베트남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며, 비행 도중 괌(Guam) 섬에 착륙해 급유를 마친 뒤 필리핀으로 향했습니다.

기상 조건은 매우 좋았고 조종사가 어떤 문제도 보고한 바 없었음에도, 항공기는 필리핀 클라크(Clark) 공군기지에 착륙하기로 예정된 시간 약 1시간 전, 태평양 상공에서 사라졌습니다. 1,000명이 넘는 인력과 수십 척의 선박, 다수의 항공기가 수색 작전에 동원되었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습니다.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물증 부족으로 항공기 실종의 원인을 규명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항공기에 손상 흔적은 없었고, 기상 조건은 이상적이었으며, L-1049 승무원으로부터 어떤 비상 상황 보고도 접수된 적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단서는 당시 같은 해역 부근에 있던 유조선 '렌젠(Lenzen)'호 선원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선원들은 하늘에서 폭발처럼 보이는 섬광을 목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해당 해역에 대한 수색이 다시 진행되었지만 역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고, 승무원 11명과 승객 96명은 사망 처리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탑승 인원 기준으로 20세기 최대 규모의 항공기 실종 사건으로 꼽힙니다.

실종된 준장

1951년 3월 23일, 미국 최대급 수송기 중 하나인 더글러스 C-124가 레이더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항공기는 뉴멕시코 로즈웰(Roswell) 공항에서 영국 밀든홀(Mildenhall) 공군기지로 군인 44명을 수송하고 있었습니다. 승객 중에는 폴 토머스 컬렌(Paul Thomas Cullen) 공군 준장도 있었는데, 그는 부하들과 함께 영국에서 제7공군 부대를 설립하기 위해 영국으로 향하는 길이었습니다.

항공기가 아일랜드 남서쪽 약 1,500km 지점의 대서양 상공을 비행하던 중, 조종사는 화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내용의 조난 신호를 무전으로 송신했습니다. 승무원은 해수면에 기체를 착수시켰고, 승객 전원은 5개의 구명 뗏목으로 옮겨졌습니다. 영국에서는 지원을 위해 장거리 폭격기 B-29가 급히 출발했습니다. B-29 승무원은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상공에서 구명 뗏목들을 육안으로 확인하다가 기지로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기이한 사건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조선과 구조 항공기가 착수 지점에 도달한 것은 3월 25일, 무려 19시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비행기도, 구명 뗏목도 없었습니다. 수천 평방마일의 바다를 샅샅이 수색했지만,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고 항공기와 승무원, 승객의 행방에 대해 만족스러운 합리적 설명을 내놓지도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준장의 높은 정보 가치 때문에 '크렘린의 손길'이 개입했다는 소문, 즉 소련 선박이 미군을 납치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었으나, 이 역시 한 번도 확인된 바 없습니다.

1년간 이어진 수색

흔적 없이 사라진 것은 미군 항공기만이 아니었습니다. 1937년 8월 12일, 소련의 DB-A 장거리 폭격기 N-209호가 모스크바의 비행장을 이륙해 아르한겔스크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소련 영웅 칭호를 받은 시기즘문드 레바넵스키(Sigismund Levanevsky)가 이끄는 승무원의 목표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Fairbanks)까지의 횡단 비행이었습니다. 초기 무전 내용을 보면 상황은 순조로웠습니다.

그러나 8월 14일, 레바넵스키는 "강풍과 짙은 구름 속을 비행 중이며, 선실 창문에 서리가 끼었고 엔진 하나가 고장 났다"고 보고했습니다. 당시 항공기는 알래스카 상공에 있었습니다. 이 메시지 직후 DB-A와의 교신은 완전히 두절되었습니다.

이후 약 1년 동안 소련, 캐나다, 미국의 조종사들이 레바넵스키의 항공기를 수색했습니다. 그러나 기체의 잔해도, 파편조차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다양했습니다. 한 가지 설에 따르면 승무원이 알래스카 엔디컷(Endicott) 산맥에 비상 착륙했다는 것인데, 미국 조종사들이 해당 지역을 면밀히 조사했지만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폭격기가 빙판 위에 착륙한 뒤 해류를 따라 대서양으로 표류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에스키모들이 캐나다 테티스(Thetis) 섬 근처 해상에서 물에 충돌하는 비행기를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의 수색 역시 허탈하게 끝났고, 승무원들은 공식적으로 전사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출처: SPUTN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