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했던 몰타 대공성전
1565년 5월 18일, 오스만 제국군이 몰타 섬을 점령하고 성 요한 기사단을 근절하기 위해 상륙하면서, 이곳에서는 끔찍할 정도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맹렬한 공방전과 막대한 희생 끝에 오스만군은 작은 성 엘모 요새를 함락하는 데 그쳤지만, 성 미카엘 요새와 성 안젤로 요새 등 기사단의 두 거점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수비군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물론 오스만군 역시 어마어마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그러던 8월 7일, 마침내 승리가 오스만군에게 미소 짓는 듯했습니다. 격렬한 공세 끝에 성 미카엘 요새 성벽에 돌파구를 낸 오스만군은 총사령관 무스타파 파샤와 정예 예니체리 부대가 선봉에 서서 요새 안으로 진입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고, 기독교 수비군들은 오스만군의 인파 앞에서 후퇴를 시작했습니다.
무스타파는 검을 들고 예니체리 병사들을 이끌며 알라와 '예언자', 그리고 소위 '절세 군주'라 불린 술레이만 술탄의 이름으로 승리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기독교 총병이 발사한 화강탄이 무스타파의 터번을 강타했습니다. 다행히 파샤는 터번에 구멍이 하나 생긴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없었고, 예니체리 병사들은 이를 지도자를 구원한 '예언자'의 개입이라 여기며 더욱 맹렬하게 돌진했습니다.
후방에서 일어난 의문의 화재
그런데 갑자기, 돌파구를 넘어 도시가 눈앞에 보이던 바로 그 순간, 오스만군 후방 진영에서 불길과 짙은 검은 연기가 치솟았습니다!
무스타파는 불길을 보고 주저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혹시 기독교 증원군이 도착해 자신의 군대가 협격당할 위기에 처한 것일까? 알 길이 없었습니다. 용맹한 그는 직접 돌파구 공격을 이끌었지만, 그 순간 지휘관이 가져야 할 전장의 '큰 그림'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신속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공격을 중단하고 불타는 진영으로 달려가기로 결정합니다.
돌파구에 있던 기독교 수비군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지 못했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모든 것은 한 명의 기사 때문이었다
몰타는 악명 높은 '예언자'의 이빨에서 기적적으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모든 것은 단 한 사람, 그리스 혈통의 기사 비첸초 아나스타기(Vincenzo Anastagi, '부활'에서 유래한 이름) 덕분이었습니다.
1531년 페루자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가문은 라벤나 출신으로, 비잔틴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그리스 혈통을 지녔습니다. 조상 중 한 사람은 대장군 벨리사리우스의 딸과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독교의 적들과 싸우고자 했던 그는 1563년, 즉 오스만군의 몰타 침공 불과 2년 전에 성 요한 기사단에 입단했습니다.
오스만군이 몰타에 상륙하자 기사단 총장 드 라 발레트는 이탈리아와 인연이 깊은 그를 시칠리아로 파견해 증원군을 모집하고 요청하게 했습니다.
100명의 기병, 운명적인 선택
8월 2일에 귀환한 아나스타기는 므디나에 머물며 기사단 기병대의 지휘를 맡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병력이 고작 100명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1565년 8월 7일, 아나스타기와 기병대는 므디나에서 해안의 요새들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연기와 폭발에 잠긴 성 미카엘 요새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기병들은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 상황을 살폈습니다. 지형을 살핀 아나스타기는 놀랍게도 오스만군 진영이 거의 방비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진영에는 소수의 경비병과 부상자, 환자, 짐꾼들만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진영을 유린한 기습
그는 즉시 행동에 나섰습니다. 병사들에게 전투 대형을 갖추라고 명한 뒤, 성 요한의 이름을 외치며 선두에 서서 검을 휘두르며 돌진했습니다.
진영의 오스만군은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남아 있던 자들조차 요새에서 벌어지는 격전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기독교 기병들이 돌진해 오자 경악한 그들은 공포에 질려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들이 더 큰 기독교군의 선봉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아나스타기와 그의 병사들은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검은 미친 듯이 '움직였습니다'. 오스만 병사들의 시신이 둘로 잘려 나갔고, 머리와 신체 일부가 허공으로 날아올랐습니다! 대부분의 기병들은 말 위에서 적을 베었고, 일부는 내려서 불을 질렀습니다.
순식간에 오스만군의 천막과 귀중한 보급품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바로 그때, 무스타파는 불길과 연기를 보고 최후의 승리 직전에 공격을 중단한 것입니다.
몰타를 구한 남자
아나스타기와 병사들은 모든 물건을 분쇄하고 불태운 뒤, 살아 있는 자들은 모두 '예언자'께 보내 버리고 므디나를 향해 말발굽 소리를 울리며 사라졌습니다.
무스타파와 병사들이 진영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불, 죽음, 파괴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분노에 사로잡힌 오스만 파샤는 몰타를 반드시 함락하고, 총장을 제외한 모든 남녀노소를 검으로 없애버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총장은 포박해 자신의 술탄에게 바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피해는 되돌릴 수 없었고, 파샤의 호언장담에도 불구하고 승리는 그의 손을 완전히 떠나 버렸습니다.
약 한 달 후, 그는 약 3만 명의 병력을 잃은 채 굴욕적으로 몰타에서 철수했습니다. 아나스타기가 몰타를 구한 것입니다.
1571년부터 1576년 사이, 위대한 그리스 화가 도메니코스 테오토토풀로스(엘 그레코)는 이 영광스러운 기사의 초상화를 그려 그의 모습을 수 세기 동안 후세에 전했습니다.

엘 그레코가 그린 아나스타기의 초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