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타냥의 본명은 샤를 드 바츠-카스텔모르(Charles de Batz-Castelmore)입니다. 그는 1611년에서 1615년 사이에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현재 제르 주)의 뤼피아크 근처에 있는 카스텔모르 성에서 태어나, 1673년 6월 25일 마스트리흐트 공성전에서 전사했습니다.
그의 후원자들
젊은 샤를 드 바츠가 1640년경 고향 카스텔모르를 떠나 파리로 향할 때, 그는 어머니인 프랑수아즈 드 몽테스키우 다르타냥의 성을 사용했습니다. 몽테스키우 가문이 아버지 쪽 가문보다 궁정에서 훨씬 유력한 집안이었고, '다르타냥'은 이 가문이 소유한 비고르 지방 영지의 이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시의 군사 교육 기관이던 프랑스 근위대 예비 장교단에 입대했고, 국왕 머스킷병 중대의 대장 트레빌(M. de Tréville)의 배려로 퐁텐블로의 프랑스 근위대 에사르 중대에 배속되었습니다. 1644년, 마자랭 추기경의 후원 아래 그는 친구 프랑수아 드 몽르죈(오시 근교 베스모 영주, 훗날 바스티유 감옥장)과 함께 머스킷병대에 정식 입대하게 됩니다.
1646년 마자랭은 머스킷병 중대를 해산시켰습니다. 프롱드의 난 기간 동안 추기경은 달타냥에게 군 지도자들에게 전달하는 여러 비밀 임무를 맡겼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알아본 루이 14세는 훗날 그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신속함과 재치가 요구되는 수많은 임무를 일임합니다. 1651년 마자랭이 브륄로 추방당했을 때에도 달타냥은 끝까지 수상을 따라갔습니다. 이러한 충성은 반드시 보상받았습니다. 1652년에는 프랑스 근위대 중위가 되었고, 1655년에는 8만 리브르를 들여 대위 직책을 매입했습니다. 이 자금은 당시 커리어 초입에 있던 콜베르를 비롯한 마자랭의 다른 신하들이 빌려준 것이었습니다.
머스킷병 달타냥
1657년, 제1머스킷병 중대가 재편성되면서 달타냥은 부중대장에 임명됩니다. 이 중대는 '대머스킷병' 또는 말의 마장(馬裝) 색깔 때문에 '회색 머스킷병'이라 불렸는데, 명목상 지휘관은 마자랭의 조카였지만 실질적인 지휘권은 달타냥이 쥐고 있었습니다.
1659년 달타냥은 샤를로트안 드 상셀레와 결혼하여 1660년과 1661년에 두 아들을 얻었으나, 1665년 부부는 별거에 이릅니다.
1660년 루이 14세는 스페인 왕녀와의 혼인식을 6월 9일 생장드뤼에서 거행했습니다. 바스크 지방을 오간 이 여정은 1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루이 14세에게 왕국 남부 지방을 순회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물론 달타냥도 행렬에 동행했습니다. 각 도시를 통과할 때마다 백성들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여섯 마리의 흰 말이 끄는 왕의 마차 앞을 위풍당당한 머스킷병들이 호위했기 때문입니다. 1660년 4월 26일 비페자작에 도착한 날, 달타냥은 카스텔모르로 말을 달려 가족들과 재회하고, 영지 내 예배당에 있는 부모의 묘소 앞에서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1667년, 그는 제1머스킷병 중대의 대위-중위(capitaine-lieutenant)로 승진합니다.
푸케 체포 작전
1661년 9월 5일, 국왕은 낭트에서 열린 국무회의 도중 니콜라 푸케를 체포하는 민감한 임무를 달타냥에게 맡겼습니다. 이후 머스킷병은 간수로 변신해 수감자와 함께 여러 차례 이감 과정을 거칩니다. 앙제 성에서 석 달을 보낸 뒤 방센 감옥으로, 이듬해 6월 20일에는 바스티유 감옥으로, 마침내 피니에롤로 옮겨졌습니다. 긴 세월 동안 달타냥은 헌신적인 간수로서 수감자를 직접 돌보았습니다. 면회객을 엄격히 선별하고, 혹독한 구금 생활 속에서도 거의 우정에 가까운 관계를 유지한 수감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상부에 빠짐없이 보고했습니다. 마담 드 세비녜는 달타냥이 푸케의 호송과 구금을 최대한 고통 없이 처리했다고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10년 후 그는 로우쟝 공작을 체포할 때에도 같은 방식으로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최후
달타냥은 1667년 프랑스가 정복한 릴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기 없는 총독이었고, 오직 전장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1672년 루이 14세가 네덜란드 연합주와의 전쟁을 일으키면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1673년, 마스트리흐트 공성전에서 그는 휴일에도 전선에 나가 싸우던 중 목에 머스킷 총탄을 맞고 전사했습니다. 전설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소설 속 인물, 달타냥
달타냥은 분명 실존했던 인물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단 한 점뿐이며 진위 여부조차 확실치 않고, 1700년, 즉 그가 죽고 27년 후에 출판된 회고록은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 회고록은 가티앵 드 쿠르틸 드 상드라스가 쓴 것으로, 그는 달타냥의 옛 동료 베스모가 바스티유 감옥장으로 있던 시절 수감자로 지내면서 가스코뉴 영웅의 삶을 접하게 됩니다.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이 회고록을 통해 달타냥의 삶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인물에게 깊이 매료되어 이 책을 늘 곁에 두고 읽었으며, 유명한 3부작 소설을 집필하는 영감을 얻습니다.
1. 삼총사
2. 그 후 20년
3. 브라젤론 자작
다만 뒤마 역시 역사적 사실에 크게 구애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건의 시기를 15년이나 앞당겼고(그래서 달타냥은 라 로셸 공성전에 참전하는 설정이 됩니다), 루이 13세와 리슐리외를 서로 대립시켰으며, 밀라디 드 윈터라는 인물과 오스트리아의 안느와 버킹엄 공작의 스캔들 같은 이야기를 창작해냈습니다.
이후 달타냥은 영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또한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드 베르제라크』에도 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