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공장에서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이 흔하게 목격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동 노동이 만연했던 배경에는 경제적 이유와 사회·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경제적 동기
저렴한 임금
어린이들은 성인에 비해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았습니다. 공장주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최소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아동 고용이었습니다.
작고 유연한 손
아이들은 손이 작아 정교한 기계 조작처럼 세밀함이 필요한 작업에 더욱 적합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섬유 공장에서 실을 맞추거나 좁은 기계 틈새를 청소하는 일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긴 근무 시간
공장은 하루에 12~16시간씩 가동되었지만, 아이들 역시 성인과 같은 긴 시간을 견디며 일했습니다. 저렴하면서도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이라는 점이 공장주들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회적·문화적 요인
노동력 수요의 폭증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값싼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빈곤층 가정의 아이들은 언제든 고용할 수 있는 풍부한 노동력 공급원이었습니다.
가정의 빈곤
당시 많은 서민 가정이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고, 부모들은 생계를 위해 자식들을 공장에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의 임금이 가족 전체의 생존을 좌우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교육의 부재
의무 교육이 법제화된 것은 19세기 후반의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학교는 사치였고, 공장 노동은 자연스러운 대안으로 여겨졌습니다.
'노동은 곧 교육'이라는 당시의 인식
당시 사회에는 일을 통해 아이에게 규율, 근면함, 실용적 지혜를 길러줄 수 있다는 보편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동 노동은 책임감을 심어주는 양육 방식의 하나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형해화된 도제 제도
일부 아이들은 도제(見習工)로 고용되어 직업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도제 제도는 충분한 보호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 채 아이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변질된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착취에서 개혁으로
빅토리아 시대 공장의 아동 노동은 열악한 작업 환경, 장시간 노동, 최소한의 권리라는 특징을 지녔으며, 광범위한 착취와 고통을 낳았습니다. 이러한 실태가 알려지면서 여론이 크게 비등했고, 결국 아동 복지와 노동자 보호를 위한 개혁과 노동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표적으로 1833년 공장법(Factory Act)은 아동의 근무 시간을 제한하고 공장 검사관 제도를 도입하며 아동 노동 규제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