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A.O. 네빌은 왜 혼혈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에게서 강제로 분리했을까?

A. O. 네빌은 누구였을까?

오버 옥타비우스 네빌(Auber Octavius Neville, 1875~1954)은 1915년부터 1940년까지 약 25년간 호주 서부주(Western Australia)의 원주민 최고 보호관(Chief Protector of Aborigines)으로 재직한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호주 정부의 원주민 정책을 실질적으로 총괄하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는데, 1905년 원주민법(Aborigines Act)에 따라 16세 미만 원주민 아동 전체의 후견인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분리한 이유: 생물학적 동화 정책

네빌이 혼혈 원주민 아이들을 가정에서 분리한 배경에는 '생물학적 동화(biological assimilation)'라는 이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혼혈 원주민들이 몇 세대에 걸쳐 백인과 결혼하면 피부색이 점차 사라지고 백인 사회에 완전히 흡수될 수 있다고 믿었으며, 이를 흔히 '피부색 없애기(breeding out the colour)'라 불렀습니다.

이러한 목적 아래 혼혈 아이들은 어머니와 고향에서 떼어져 선교 시설이나 정착촌으로 보내졌습니다. 대표적인 시설인 무어 리버 원주민 정착지(Moore River Native Settlement)에서 아이들은 영어 교육과 함께 가사·농업 노동 훈련을 받았고, 성장한 뒤에는 백인 가정의 하숙이나 저임금 노동에 배치되었습니다. 2002년 영화 『토끼 울타리(Rabbit-Proof Fence)』는 이곳에서 가족을 찾아 도주한 세 소녀의 실화를 담아 네빌의 정책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도난 세대'와 끝나지 않는 논란

이렇게 강제로 분리된 원주민 아이들은 오늘날 '도난 세대(Stolen Generations)'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1997년 호주 인권평등위원회의 '브링잉 뎀 홈(Bringing Them Home)' 보고서는 강제 분리가 수만 명에 달했으며 깊은 정신적·문화적 상흔을 남겼다고 규정하고 네빌이 집행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08년에는 케빈 러드 당시 총리가 도난 세대에 대한 국가적 사과를 공식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네빌이 당시 법령과 '아동 보호'라는 명분 안에서 행동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방대한 역사 기록과 생존자들의 증언은 그의 재직 기간 동안 대규모 강제 분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는 단순한 개인의 악행이라기보다 백인 우월주의에 기반한 동화주의라는 시대적 이념의 산물이었으나, 그 결과는 수많은 가족의 파괴와 세대에 걸친 상처로 이어졌다는 것이 오늘날의 역사적 평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