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2년 미국 매사추세츠 식민지의 세일럼(Salem)에서 벌어진 마녀재판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재판에서 피고인들이 잔혹한 고문을 당했다고 상상하지만, 역사 기록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유럽의 마녀사냥과 달랐던 세일럼
당대 유럽의 마녀사냥에서는 자백을 강요하기 위해 랙(rack) 같은 고문 도구를 사용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반면 세일럼 마녀재판에는 이러한 체계적인 신체 고문이나 심리적 강압 절차가 공식적으로 동원된 증거는 없습니다. 이 점에서 세일럼은 당시 유럽의 마녀재판과 구별되는 특징을 보입니다.
고문은 없었지만, 압박은 있었다
공식적인 고문이 없었다는 것이 피고인들의 고통이 적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피고인들은 다음과 같은 거센 압력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 극심한 편견과 공포 분위기 — 마녀라는 낙인찍힌 순간 공동체 전체의 적대에 노출되었습니다.
- 혹독한 심문과 추궁 — 판사와 목격자들의 끊임없는 질문과 검증 속에서 무죄를 입증해야 했습니다.
- 비참한 수감 환경 — 당시 감옥은 춥고 위생 상태가 열악해 여러 피고인이 옥중에서 사망했습니다.
- 사회적 몰락 — 가족과 재산마저 빼앗기며 삶 전체가 무너졌습니다.
예외적으로 회자되는 사례: 길스 코리
농부 길스 코리(Giles Corey)는 심문에 응하지 않자 '페네 포르테 에 두레(peine forte et dure)'라 불리는 방식으로 몸 위에 돌을 하나씩 쌓아 눌렸고,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는 엄밀히 말해 자백을 뽑아내기 위한 고문이라기보다 침묵에 대한 제도적 처벌이었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명백한 강압적 폭력으로 평가됩니다.
결론
정리하면, 세일럼 마녀재판에서 유럽식 의미의 '체계적인 고문'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공포에 가득한 사회적 압박, 혹독한 심문, 열악한 감옥 생활 속에서 버텨야 했고, 그 결과 19명이 교수형에 처하는 등 수많은 비극이 빚어졌습니다. 고문의 부재가 인도주의적 재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이 사건이 남긴 핵심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