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이라 불리게 된 배경
역사에서 말하는 백일(Hundred Days)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엘바 섬에서 탈출하여 파리로 귀환한 1815년 3월부터, 같은 해 6월 워털루 전투에서 최종 패배할 때까지 약 100일간의 기간을 가리킵니다. 이 짧지만 격동적인 시기는 프랑스 역사, 나아가 유럽 근대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엘바 섬에서의 귀환
1814년 라이프치히 전투와 연이은 패전 끝에 나폴레옹은 지중해의 작은 섬인 엘바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배 생활에 머물지 않고 1815년 3월 1일 프랑스 남부 골프주앙에 상륙했으며, 이후 파리를 향해 진군했습니다. 놀랍게도 나폴레옹에게 맞서기 위해 파견된 군대마저 그를 환영하며 다시 그의 편에 섰습니다.
백일 통치와 워털루의 패배
1815년 3월 20일, 나폴레옹은 튈르리 궁전으로 복귀하며 제정을 재건했습니다. 그러나 빈 회의에 모여 있던 유럽 열강들은 즉각 제7차 대프랑스 동맹을 결성하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마침내 1815년 6월 18일 벨기에에서 벌어진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과 블뤼허가 지휘하는 프로이센군 연합에 완패했습니다.
역사적 의미
이 약 100일간의 기간은 나폴레옹이 권력을 되찾았다가 다시 잃은 극적인 순환으로 인해 '백일천하(百日天下)', 즉 '백일 정권'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워털루의 패배 이후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영구 추방되었고, 프랑스에는 부르봉 왕조가 복귀하면서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격변의 시대는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오늘날에도 '백일천하'라는 표현은 짧게 지속된 권력이나 유행을 비유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