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투트모세 1세는 정말 케르마의 쿠시 왕국 궁전을 파괴했을까?

고대 누비아의 강대한 도시였던 케르마(Kerma)는 오늘날 수단 북부에 위치한 유적으로, 한때 쿠시 왕국의 수도로 번영했습니다. 그런데 흔히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1세(Thutmose I)가 이 도시를 무참히 파괴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사실일까요?

파괴를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흥미롭게도, 투트모세 1세가 케르마를 파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고고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화재나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파괴의 흔적이 명확하게 확인된 바 없으며, 기록 역시 구체적인 파괴 행위를 입증하지 못합니다.

정복 이후 점진적으로 해체되고 버려진 도시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다릅니다. 기원전 1504년경 투트모세 1세의 통치 시기에 이집트가 쿠시 지역을 정복한 이후, 케르마는 갑작스러운 파괴가 아니라 상당한 시간에 걸쳐 서서히 해체되고 마침내 버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집트의 지배가 확립되면서 도시의 정치·행정 중심 기능이 약화되었고, 주민들이 점차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서 도시 자체가 자연스럽게 쇠퇴했다는 것입니다. 즉, '파라오의 복수심에 의한 파괴'라는 극적인 이미지보다는, 정복과 통치 구조 변화 속에서 일어난 점진적 소멸에 가깝습니다.

케르마 유적이 남긴 의미

그럼에도 케르마는 아프리카 고대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거대한 벽돌 신전인 데프푸파(deffufa)를 비롯한 웅장한 건축물은 쿠시 왕국이 나일강 유역의 독자적인 문명을 이루었음을 보여줍니다. 도시가 사라진 후에도 쿠시 문명은 이후 나팔타와 메로에를 중심으로 다시 부흥하며 긴 역사를 이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