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스티븐 F. 오스틴, '텍사스의 아버지'로 불린 위대한 개척자

텍사스의 아버지, 스티븐 F. 오스틴

스티븐 F. 오스틴,  텍사스의 아버지 로 불린 위대한 개척자
스티븐 풀러 오스틴(Stephen Fuller Austin, 1793년 11월 3일 ~ 1836년 12월 27일)은 '텍사스의 아버지(Father of Texas)'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텍사스가 아직 멕시코 영토였던 시절, 그는 미국 이주민들을 이끌어와 현재 미국 남서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의 두 번째 식민화를 성공적으로 주도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텍사스의 주도인 오스틴 시에 새겨져 있으며, 나커도체스에 위치한 스티븐 F. 오스틴 주립대학교나 셔먼의 오스틴 칼리지 등 여러 교육 기관의 이름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기 (1793~1820)

스티븐 F. 오스틴은 버지니아주 남서부의 광산 지대인 와이스 카운티(Wythe County)에서 태어났습니다. 모세 오스틴(Moses Austin)과 메리 브라운(Mary Brown) 사이의 둘째 자녀로, 첫째 딸 엘리자는 어린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1798년 6월 8일, 네 살이던 스티븐은 가족과 함께 당시 스페인 왕실의 지배를 받던 미주리 지역, 즉 현재의 미주리주로 이주했습니다. 루이지애나 매입 이후 그의 아버지는 워싱턴 카운티의 신설을 미국 정부에 요청했고, 자신이 세운 포토시(Potosi)라는 도시가 그 군의 중심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11세가 되던 해 스티븐은 코네티컷주의 베이컨 아카데미(Bacon Academy)로 보내져 공부했으며, 이후 렉싱턴의 트랜실베이니아 대학교(Transylvania University)에 진학해 1810년에 졸업했습니다. 그는 변호사로서 수련을 쌓았고, 21세의 나이에 미주리 준주 의회에 진출했습니다. 이후 정치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세인트루이스 은행 설립에 기여했지만, 1819년 금융 공황을 겪으면서 재산을 잃고 몰락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아칸소 영토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오늘날 리틀록(Little Rock) 인근, 아칸소 강 남쪽 기슭에 부동산을 매입했습니다. 1820년에는 다시 루이지애나로 향했고, 뉴올리언스에서 조지프 H. 호킨스(Joseph H. Hawkins)라는 인물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텍사스로의 이주

스티븐이 아칸소에서 경력을 쌓고 있던 동안, 그의 아버지 모세 오스틴은 뉴스페인(New Spain) 당국으로부터 앵글로색슨계 정착민 300가족을 텍사스로 이주시킬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귀환 도중이던 1821년 6월 10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정착민들을 텍사스에 정착시키는 거대한 과업을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스티븐 오스틴은 1821년 8월 12일 텍사스의 산안토니오(San Antonio)에 도착해, 아버지가 받았던 허가를 갱신하기로 결심합니다. 여행 도중 그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고, 텍사스가 멕시코의 한 주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안토니오 마리아 마르티네스(Antonio María Martínez) 총독으로부터 정착민 수용 허가를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총독은 그에게 산안토니오에서 엘브라조스(El Brazos)에 이르는 멕시코만 연안을 탐사하며 적합한 식민지 부지를 찾을 것을 허락했습니다. 스티븐은 마누엘 베세라(Manuel Becerra)와 세 명의 아라나마(Aranama) 인디언을 대동하고 이 탐사 원정을 진행했습니다. 결국 정착민들은 1821년 12월, 현재의 브레이조리아 카운티(Brazoria County)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며, 각 가족은 스스로 개간할 수 있는 토지를 배정받았습니다.

새 정부의 승인과 식민지의 확장

그러나 멕시코시티에 수립된 아구스틴 데 이투르비데(Agustín de Iturbide)의 새 정부는 스페인 당국이 부여했던 식민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스티븐 F. 오스틴은 독립 이전에 아버지가 받은 허가를 새 정부로부터 다시 확보하기 위해 직접 멕시코시티까지 장거리 여정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어 1823년, 황제 아구스틴 1세로부터 정착 허가를 얻어냅니다. 하지만 황제가 퇴위하면서 새롭게 들어선 멕시코 공화국 정부가 이전 체제의 모든 법령을 무효화하는 변수가 생겼습니다. 다행히 오스틴의 식민 계약은 1823년 4월 중순에 이르러 최종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1823년 7월 텍사스로 돌아온 스티븐 오스틴은 산펠리페 데 오스틴(San Felipe de Austin)을 자신의 식민지 중심지로 삼았습니다. 1827년에는 올드 산안토니오 로드(Old San Antonio Road)를 따라 추가로 백여 가족을 더 정착시켰는데, 멕시코 당국은 이들이 코만치(Comanche)족의 공격으로부터 국경을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