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왜 트렌트 공의회는 루터의 '성경만' 주장 대신 초대교회와의 연속성을 강조했을까?

16세기 종교개혁은 서방 교회의 권위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원리를 내세우며 교회 전통의 권위에 도전하자, 가톨릭교회는 이에 맞서 트렌트 공의회(1545~1563년)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트렌트 공의회는 단순히 성경 해석을 두고 논쟁하기보다,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연속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했습니다.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루터의 도전: 오직 성경

루터는 신앙과 교리의 유일한 최종 기준이 성경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교황과 공의회의 결정도 성경 앞에서 심사받아야 한다는 의미였으며, 당시 로마 교회의 권위 체계 전체를 흔드는 혁명적 주장이었습니다. 만약 트렌트가 순수하게 성경 본문만을 놓고 논쟁했다면, 개혁자들이 설정한 경기장에서 싸우는 셈이 되었을 것입니다.

트렌트의 대응: 전통의 권위 재확인

1. 전통의 구속력 확정

트렌트 공의회는 성경과 더불어 구전 및 문서 전통(tradition) 역시 동등하게 구속력 있는 신앙의 근거라고 공식 선폍했습니다. 즉, 사도들로부터 교회 안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은 성경에 종속되지 않는 독립적 권위를 지닌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루터의 '오직 성경' 원리에 대한 직접적인 반박이었습니다.

2. 일곱 성례의 교부적 근거 제시

개혁자들은 성경에 명시된 성례만을 인정해야 한다며 가톨릭의 일곱 성례(세례, 견진, 성체, 고해, 병자성유, 서품, 혼인)를 비판했습니다. 이에 대해 트렌트는 이 일곱 성례가 초대교회 교부들(patristic writers)로부터 일관되게 전승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수 세대에 걸쳐 이어진 교회의 실천이라는 정통성을 주장한 것입니다.

3. 성경 정전(Canon)의 확정

루터는 구약 외경(제2경전)의 정전 포함 여부를 문제 삼았습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이에 대해 성경 정전 목록을 명시적으로 확정하고, 외경을 포함한 정전이 초대교회부터 사용되어 온 판본에 근거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통해 어떤 책이 성경인지 결정할 권위 자체가 교회 전통에 있다는 논리를 관철했습니다.

4. 불가타(Vulgate)의 공인

또한 트렌트는 예로니모가 번역한 라틴어 성경 불가타 역본을 가톨릭 교회의 공식 성경으로 공인했습니다. 이 역본은 수백 년간 서방 교회의 신앙과 전례를 형성해 온 텍스트였으며, 그 자체가 초대교회와 중세 교회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연속성 강조의 신학적·전략적 이유

결국 트렌트 공의회의 핵심 논리는 이렇습니다. 성경 자체가 교회 안에서 탄생하고, 교회가 어느 책을 정전으로 인정할지 결정했다면, 성경보다 먼저이자 함께하는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 없이는 성경도 온전한 권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두 가지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첫째, 루터가 선택한 '성경 본문 해석 논쟁'의 판을 벗어나 교회의 역사적 정통성이라는 더 넓은 무대로 싸움을 옮겼습니다. 둘째, 초대교회 교부들의 저작과 실천을 근거로 제시함으로써, 개혁자들을 '역사와 단절된 새로운 종파'로 규정하고 가톨릭을 '그리스도교의 원래 모습을 지킨 참된 교회'로 위치시켰습니다.

맺음말

트렌트 공의회가 루터의 성경 강조에 맞서 초대교회와의 연속성을 내세운 것은 단순한 방어적 반응이 아니라, 권위의 근거를 무엇으로 삼느냐는 근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이었습니다. 루터에게는 성경이 최종 권위였지만, 트렌트에게는 성경과 전통을 함께 품고 전승해 온 교회 공동체야말로 진리의 보증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대조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의 근본적 차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